국내 대기업의 사외이사 가운데 상당수가 소속 회사 전·현직 임원 또는 관련 정부부처나 금융감독기구 출신 인사 등 소속 회사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2일 삼성, LG, SK, 현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6대 그룹 54개 계열사 사외이사 163명을 대상으로 사외이사제도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경영 감시 등을 위해 1998년 도입된 사외이사제도가 취지와 달리 소속 회사에 대한 견제보다 오히려 로비용 포석이나 전직 고위관료 등의 낙하산 자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영감시보다는 회사로비? 경실련에 따르면 조사대상 163명 가운데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금융감독기구 전·현직 인사는 관세청장 출신의 백원구 LG투자증권 사외이사 등 33명이었다. 계열사와 이해관계가 밀접한 정부부처나 연구원 출신 인사도 건교부 차관을 지낸 김건호 LG건설 사외이사 등 11명이었다. 금융감독기구에서는 국세청 출신 인사가 9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사내이사'나 다를 바 없는 계열사 전·현직 임원도 SK상사 출신의 김이기 SK글로벌 사외이사 등 7명이나 됐다. 결국 조사대상 163명 가운데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이 51명으로 31.3%나 차지해 경영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낳고 있다.
두 회사에서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사람이 LG전선과 LG산전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구자윤 이사 등 29명(17.8%)이나 됐고 두 차례 이상 중임한 사람은 무려 82명(50.3%)으로 나타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제도가 처음 도입된 98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맡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액주주 보호는 뒷전 사외이사 추천도 군소 주주나 주주제안 형식으로 이뤄진 경우는 한차례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외이사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두고 있는 후보추천위원회 추천을 거쳐서 이사를 선임한 곳도 54개사 중 29개사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해 도입된 '집중투표제'는 54개 회사 중 단 2개사(SK텔레콤, 세계물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관에서 배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 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소액 주주들이 사외이사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봉쇄된 가운데 최대주주나 지배주주의 영향력 아래 사외 이사진이 구성되고 있는 셈이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사외이사제도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공시 제도를 활성화하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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