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마을숲 이야기/ 양평군 보룡리 느티나무숲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마을숲 이야기/ 양평군 보룡리 느티나무숲

입력
2003.09.03 00:00
0 0

양평∼홍천간 국도를 달리다가 샛길로 들어서면 단월면 보룡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숲을 이루고, 도로 오른쪽에는 숲에 둘러싸인 보산정(寶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보산정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무안 박씨의 선조인 간의대부 송림공(諫議大夫 松林公)이 낙향하여 시회장(詩會場)으로 건립한 것에서 비롯된다. 고려 우왕 1년(1375년)에 창건되어 수학당(修學堂), 시회장, 소요지(逍遙地) 등으로 사용되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차례 증축을 하였던 것을 1974년 무안 박씨 종중에서 기둥과 벽 등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복원하였다. 보산정은 조그마한 동산 위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소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전나무 등 우리나라 고유 수종들로 둘러싸여 있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자에 오르면 나무 사이로 바깥이 잘 보인다.

정자의 아래쪽에는 청룡과 황룡이 살았다는 전설이 담긴 신비로운 연못이 있어 정취를 더해 준다. 보산정의 정문인 흥례문(興禮門)과 그 옆의 느티나무는 보산정을 찾는 이로 하여금 포근함을 느끼게 하고, 문 앞의 느티나무 사이엔 마을사람과 행인들을 위한 나무 의자가 있다. 마을 사람들과 느티나무가 서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현대적 공간이다.

보산정 건너편으로 박씨 문중의 비각과 아름드리 느티나무 노거수들이 위엄을 자랑하고 비각 주위에는 나이가 어린 느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세대간의 아름다운 공존을 느끼게 한다. 또한 무성한 숲 사이에 빈 터가 넓게 남아 있어 시원함도 느낄 수 있다. 다만 마을 진입로를 따라 좌우에 철제 울타리 등 인공적인 장애물을 설치한 것이 자연스러움을 줄여 아쉬움을 준다.

느티나무들은 노거수로서 나이가 수백 년 된 것도 여러 그루다. 이중 한 그루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의 키는 14m에 불과하지만 가슴높이의 둘레는 6m로 어른 3명이 감싸 안아도 남을 정도로 굵고, 나이가 650년이나 된 거목이다. 느티나무 줄기의 아래 부분은 심한 굴곡과 함께 썩은 부분을 보수한 부분까지 있어 세월의 풍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외에도 여러 그루의 노거수들이 일렬로 서 있으며 그 크기와 나이 또한 보호수와 견줄만 하다.

느티나무 노거수 중 도로변에 있는 나무는 내부 부패 때문에 줄기가 부러질 위험이 있어 외과수술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노거수 중 한그루는 주택의 바로 옆에서 자라고 있는데 집을 지을 당시 집을 나무에 너무 가까이 지었기 때문에 느티나무 가지 중의 하나가 없어야 집의 지붕과 벽을 제대로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느티나무의 가지를 소중히 여겨 그 가지를 잘라내지 않고 가지가 벽과 지붕을 통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보룡리의 주민들은 느티나무 가지 하나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병든 나무를 보호 관리하는 마음이 남달라 지금까지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숲이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쉬운 점은 이전에는 지금의 포장도로가 있는 부분에도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있었을 터인데 도로 포장으로 인하여 이 나무들이 모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

그러나 단월면 보룡리의 느티나무 마을숲은 규모는 작지만 보산정, 비각, 느티나무 보호수와 노거수들이 잘 어우러져 있고, 마을 주민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보산정을 처음 세우고 느티나무를 심은 보룡리의 옛 사람은 가고 없지만, 나뭇가지 하나라도 아끼며 집을 지은 오늘의 보룡리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보산정과 이 느티나무 숲을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잘 전해 줄 것이란 믿음이 간다.

배 상 원 임업연구원 박사 ba1144@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