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럼 연애는? 1일 만난 소설가 이만교(36)씨에게 물었다. 그는 "연애는"하고 입을 열었다가 작은 숨을 쉬었다. 첫 장편 제목 '결혼은'과 '미친 짓이다' 사이에 넣은 쉼표를 떠올리게 했다. "연애는, 좋은 것인데…"란다. 할 말이 많다는 뜻이다. 첫 소설집 '나쁜 여자, 착한 남자'(민음사 발행)는 말줄임표 뒤의 '할 말'들이다. 단편 6편은 대개 연애에 관한 것이고, 그것도 삐딱한 사랑 얘기다. 얼마나 정숙한지 이름마저 '정숙'인 여자가 있다.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고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행운이 찾아오면 감사해 하고 불행이 찾아오면 더 큰 불행을 겪지 않았다며 감사해 한다. '착한 여자'다. 한 남자가 있다. 어린 부하직원과 몰래 연애하고, 서류를 꾸며 편법으로 거래한다.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로 죽어 보험금으로 집 장만한 것을 불행 중 다행이 아니라 정말 큰 다행이라고 여긴다. '나쁜 남자'다. 나쁜 남자가 착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의 착한 행실과 순한 마음 쓰임새가 미련스럽고 답답하다. 그런데 애틋한 감정이 생긴다.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어쩐지 그 여자처럼 세상을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할 것 같다.거기까지다. 그때부터 세상은 여지없이 까발려지기 시작한다. 학원에 다니겠다며 돈을 받아간 어린 애인의 얘기는 거짓말, 맛없는 된장국을 맛있게 먹어서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다는 착한 여자의 얘기는 거짓말, 아내의 교통사고는 그냥 사고였을 뿐이라는 나쁜 남자의 얘기는 거짓말…. 세상은 모르면서 속는 게 아니라 알면서 속는 것이라고, 본 적도 없는 희망을 믿는 게 아니라 병약한 희망은 위선이라고 믿는 것이란다. 착한 여자와 나쁜 남자의 이야기인 소설의 제목은 '나쁜 여자, 착한 남자'다. 정말, 나쁜 사람은 어느 쪽이었을까.
왜 연애소설이냐고 물었다. "모든 작가는 좋은 연애소설 한 편을 쓰고 싶은 꿈이 있다"고 답한다. "연애의 감정과 행위에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인간의 본성이 모여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욕망은 어떤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연애 묘사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맨 얼굴을 내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가 보기에 '나쁜 연애'는 '나쁜 세상'과 동의어다. '농담을, 이해하다'에서 앞뒤 꽉 막힌 순진한 남자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 세상이 '알아도 못 알아들은 척, 혹은 못 알아들어도 알고 있는 듯 적절하게 넘어가는' 곳임을 알게 된다. '그녀, 번지점프 하러 가다'에서 권태에 빠진 가정주부는 낯선 청년과의 만남에 들떴다가 혼자만 부풀렸던 연애 감정임을 깨닫고, "이건 강간당한 것보다 더 지독해!"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나는 이 냉혹한 세상을, 이 세상의 기만성을, 비웃고 싶었고 경고하고 싶었고 날카롭게 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세상은 그의 소설보다 좀더 서늘하고, 좀더 냉정하고, 좀더 잔혹하다. 8년 연애했고 결혼 7년째라는 그.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80년대에 연애할 때 나는 그것이 장애와 오해를 이기고 이룩하는, 삶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달라졌고 또 너무 많은 모습을 갖게 됐다."
세 번째 장편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민음사 발행)도 소설집과 함께 냈다. 우연히 갖게 된 공 때문에 갈라서고 싸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도둑질, 패싸움, 따돌림 등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작가가 보기에 어른들이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문체는 서정적이되 주제는 결코 따사롭지 않다. 그는 "지식인의 먹물 냄새가 엷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시정잡배와 저잣거리에서 뒹굴면서 쓰여지는 글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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