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베이징 제1차 회담이 지난 달 31일 끝났다. 회담이 완전 결렬되지 않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대화 지속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회담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그러나 회담 전 예상과 달리 공동합의문 채택과 다음 회담 날짜에 대한 결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회담은 회담 결렬의 책임을 서로 회피하는 차원에서 최소한의 비공개 합의로 끝났다.
6개항의 합의사항은 앞으로 무엇이 6자회담의 주요한 걸림돌이 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부장은 합의 사항을 발표하면서 전반적인 참여국의 지혜를 모으는 일, 차기회담까지 당사국을 서로 자극하지 않는 일, 북한과 미국이 동시 및 병행 조치에 합의하는 일 등을 6자회담의 성공 요건으로 들었다.
차기회담까지 참여국이 서로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로 한 것은 북한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담에 대한 미국 내 보수파들의 회의적 태도와 비난 역시 회담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지혜를 모으는 일은 원론적 차원의 언급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의 문제는 참여국 모두의 지혜를 요구하는 일이다.
미국은 '핵 포기 후 대화'의 입장에서, 북한은 '안전보장 후 핵 포기' 입장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 참여국들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5대 1의 대북한 설득 구도를 이루었다. 문제는 북한을 제외한 참여국들이 북한을 설득하는데 합의하고 이를 위해 성의를 갖고 '지혜'를 모을 수 있느냐에 있다. 북한이 회담 후 공식적으로 중국이 발표한 합의 사항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회담 무용론을 들고 나온 것도 차기 회담 이후 막후 설득과정에서의 일방적인 압력을 거부한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된다.
내용적으로는 미국과 북한의 동시병행적 조치를 조화시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은 일단 북한의 핵 포기가 어느 정도 진실한 것으로 인정되면 북한이 기대하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이에 맞게 조정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자신들의 구체적 입장과 합리적인 논리를 공개하는 동시에 회담 불참 위협을 공표함으로써, 베이징에서 나타난 5대 1의 일방적인 회담 구조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단 6자회담이 시작된 마당에 북미 양쪽 모두 회담 결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최소한의 책임감은 갖고 있다고 볼 때 회담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차기 회담까지 강도 높은 물밑 외교를 통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번 1차 회담에서 한국은 한미일 공조를 지키면서도 북한을 소외시키지 않는 신중한 외교 자세를 보였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북한은 물론 미국이 다음 회담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깨는 요인을 제거하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회담을 통해 드러난 각국의 입장을 고려,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의견 조율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는 물론 중국, 러시아 등과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 북미 간의 의견 차이를 좁혀나가야 한다. 6자회담을 넘어 한국 외교의 도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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