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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7·끝>게이트의 사슬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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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7·끝>게이트의 사슬 ⑩

입력
2003.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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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말, 김현섭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의 측근인 최규선씨와 비밀리에 접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최씨의 비리가 인터넷에 폭로되면서 홍걸씨 관련 의혹이 제기되던 때였다. 김 비서관은 최씨와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수 차례 접촉했지만 최씨는 "폭로자인 천호영만 잡아넣으면 별 일 없을 것"이라고 넘겼다. 김희완씨도 "확대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4월 초 '천씨의 폭로가 홍걸씨에게 번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청와대는 안도하고 최씨에 대한 조치를 유보했다.그러나 최씨는 4월9일 언론에 "홍걸씨에게 수만 달러씩 모두 9억원 가량의 용돈을 줬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고 김 비서관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 비서관은 최씨 회유 작업에 나섰지만 최씨는 청와대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내가 들어가면 홍걸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다급해진 김 비서관은 김희완씨에게 "최씨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 "처음엔 민정쪽도 최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김 비서관은 '최씨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회유와 정보수집은 최씨의 발언 이후 본격화했다. 초기 대응을 잘못해 일이 커졌다고 후회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 밖의 '대어'가 걸려들었다. 최씨와 한나라당간의 관계가 포착된 것이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4월19일 오전 청와대로부터 특별지시를 받는다. "최씨가 이회창 총재측에 20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제보가 있으니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하라"는 것이었다. 김 비서관은 팩스로 자료까지 보내며 종용했고 설 의원은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폭로는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민주당 기자실에서 이뤄졌고 통상적인 사실확인 작업도 거치지 않았다. 그만큼 다급했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최씨가 폭로한 '청와대의 밀항 권유설'로 더욱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밀항을 권유했다는 최성규 총경마저 미국으로 도피, 파문은 더욱 컸다. 때문에 설 의원의 폭로는 '밀항설 물타기'나 '홍걸 구하기'로 비쳐졌다. 수사검사 A씨는 "밀항설로 위기감에 빠진 청와대가 설 의원에게 특명을 내려 다급하게 터뜨린 일"이라고 규정했다.

설 의원도 청와대에 의한 '기획폭로'였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김현섭이 전날 부탁을 했다. DJ가 직접 전화하지 않더라도 청와대가 결정해 내게 요구한 것이다. 청와대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야당의 공세로 청와대가 무척 힘든 때였고 반전이 필요했다. 청와대가 모든 걸 조사해 자료를 넘겼다. 김희완씨와 홍걸씨의 동서 황인돈씨 등에게도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1년여간 제보자를 숨겨온 이유에 대해 "정권이 살아있는데 어떻게 밝히나. 청와대를 보호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청와대의 기획폭로에는 박지원 비서실장과 김한정 제1부속실장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실장을 정점으로 김현섭-김한정 삼각 라인이 가동됐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 간부 B씨의 말. "중진의원이 청와대 비서관의 지시를 받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 김현섭은 메신저일 뿐 박 실장과 민정수석에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김현섭은 '박지원맨'이라고 불릴 정도로 총애를 받았고 김한정도 마찬가지다. 설 의원도 박 수석과는 절친한 사이다. 수사가 진행중이라 박 수석으로 확언할 순 없지만 국외자격인 민정수석이 총지휘했다고 보긴 힘들다."

이재신 민정수석도 다른 고위층을 겨냥했다. "청와대는 국정원과 같은 비선구조다. 내 공식 업무도 아니거니와 날 안거치고 갈 수 있다. 누가 지시했는지 말할 입장이 못된다. 그러나 김현섭이 다 한 게 아니고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외국에 체류중인 그에게 모두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김 실장도 폭로과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설 의원의 5촌 외조카인데다, 폭로 다음날 설 의원과 김현섭, 김희완씨와 만나 후속 대책까지 논의했다. 최씨도 "김 실장과는 잠깐 스쳐 인사했는데 그의 소개로 김현섭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설 의원을 도와주려 한 것일 뿐"이라며 개입의혹을 부인했다.

20만 달러 폭로에는 김희완씨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김씨는 김 비서관과 수십 차례 접촉하며 최씨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20만 달러설을 입증할 테이프와 사진도 있다"고 장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 의원은 폭로 직후 김씨를 만나 "빨리 증거물을 달라"고 요구했고 김씨는 즉석에서 최씨의 6촌형인 이모씨에게 전화해 "돈이 건너갔다는 얘길 검찰에 하고 테이프를 가져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비서는 최씨의 테이프와 앨범을 보관하던 전기작가 허모씨 집까지 찾아갔다. 다급해진 김 비서관은 4월 말 김씨에게 "기자회견을 갖고 20만 달러건을 직접 폭로해달라. 아니면 여기 함께 있는 기자에게 전화로라도 밝혀달라"고 간청했지만 도피중이던 김씨는 외면했다.

김씨는 현재 자신이 20만 달러건의 제보자라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김씨는 "청와대가 알고 묻길래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것이지 먼저 제보한 게 아니다"라며 '청와대 인지설'을 제기했다. 그는 "박 실장과도 잘 아는데 일개 비서관과 딜을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는 "김씨가 20만 달러건에 대해 확신했고 구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제보했다"는 설 의원과 김 실장의 주장과 다르다.

또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이 최씨를 도청까지 했던 만큼 관련 정보가 민정라인에 축적돼 있었고 김 실장 등에게도 보고된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측은 "김은성 2차장의 구속 이후 최씨에 대한 정보수집이 중단돼 20만 달러건은 폭로 후에야 알았다"고 부인했고 민정수석실은 "정보지 수준의 첩보였다"고 비껴갔다.

기획폭로에도 불구, 홍걸씨 수사가 확대되자 청와대는 검찰에 "두 아들을 구속하는 것은 가혹하지 않느냐"고 간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했지만 검찰은 단호했다. 청와대 관계자 C씨는 "공명심 경쟁이 붙은 양 수사팀은 '구속 못시키면 우리가 죽는다'고 여겼다"며 "홍걸씨에게 귀국 즉시 출두하라고 종용,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검찰 고위간부 D씨는 "청와대가 홍걸씨 구명을 위해 각본을 짜놓고 변호사 선임부터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이 간부는 "밀항설도 밝혀지진 않았지만 냄새는 났다"며 "사건이 어떻게 튈지 정보가 부족했던 청와대 인사가 확산을 막기 위해 '일단 피해 있으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최규선 정말 20만弗 줬을까

지난 8월28일 최규선씨는 서울지법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20만 달러를 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1년 이상 계속된 '20만 달러'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발언이지만 의문은 아직도 남는다.

먼저 김희완씨는 "최씨로부터 20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말을 수 차례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씨는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등이 포스코 등과 맺은 20만 달러 자문계약을 두고 내가 '미 정계 거물과 면담하려면 2억∼3억원 정도는 줘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씨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김씨가 여러 차례나 오해했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김홍걸씨의 동서 황인돈씨는 "최씨가 '이정연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총재의 국제특보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이를 부인하면서 "황씨가 특보설에 대해 청와대에서 들었는지 먼저 묻길래 '그게 큰 뉴스냐'고 반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에 보험을 들어뒀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이 총재의 방미일정을 도와줬다는 뜻"이라고 비껴갔다.

최씨는 "이 총재가 1996년 처음 만났을 때 '정치를 하려는데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3차례 만났다"고 주장했지만 이회창씨측은 "최씨를 한번 만났다"고 엇갈린 진술을 했다. 천호영씨의 폭로글이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게재된 시점을 전후로 최씨와 윤여준 의원이 2차례 통화한 것 때문에 '삭제 청탁' 의혹도 제기됐다. 설훈 의원 등은 "김희완씨는 20만 달러와 테이프에 대해 확신했지만 이회창씨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태도를 바꾸었다"고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측은 "청와대의 기획·조작극"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수사팀도 시각이 엇갈린다. 간부검사 A씨의 말. "폭로내용이 작문으로 보기에 너무 구체적이었다. 정황은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최씨도 언제 진술을 뒤집을지 몰랐다. 대선까지 기다렸지만 의외로 진술을 안바꿨다. 사실상 미제로 남았다."

수사검사 B씨는 "모든 계좌를 추적하고 최씨의 6촌형 이모씨의 시골집까지 뒤졌지만 돈이나 테이프 등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절하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과시욕이 많은 최씨가 20만 달러를 주고 특보가 될 것처럼 떠들고 다녔을 공산이 크다. 나중에 문제가 되자 '키신저 자문료'로 변명했을 수 있다"고 절충적 해석을 내놓았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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