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체험론적 여성론'이라는 에세이를 쓴 것은 프랑스에서 돌아온 1961년 창간된 잡지 '신사조'의 부탁으로 6개월 간 연재하면서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가정생활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오랜 세월동안 지켜온 가부장적 입장에서 아내를 대했고 여성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여성의 삶의 가치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어긋나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우리 가정생활에 위협을 느끼고 경고하는 의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가정은 점점 파괴되고 이혼율 세계 일등국이 돼 가고 있다.우리 사회에서 결혼생활, 특히 성생활은 자기 위주가 아닌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생활 체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의 하모니즘은 바로 이런 갈등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지며 조화를 이루는 철학을 담고 있다. 특히 미혼모가 다수 발생하는 것은 남성들이 성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이기주의적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서양 사람들을 보고 이기주의, 개인주의자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기주의적인 그들의 성생활을 보면 자기보다도 상대방에 대해 더욱 섬세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가 마인드 콘트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여성도 남성이 이런 자제력이 있는가에 대해 무척 예민하다. 프랑스에서는 유부녀가 혼자 댄스 홀에 가는 예가 거의 없다. 그런데 서울에 와 보니 유부녀들이 바람을 피우는 장소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여 이혼 일등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여자들은 처녀 때 바람을 피우다가도 시집 가면 남편만 섬기는데 한국 여자들은 시집 가기 전에는 얌전하다가도 시집만 가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국 여성들의 이중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여성들의 성생활이 얼마나 불만족스러웠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부부관계에 대해 돌아보고 싶었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한국 여성이 그렇게 된 데에는 상당 부분 남성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불감증 환자들이 유달리 많다. 그것은 남성이 일방적으로 일을 끝내기 때문이다. 여자의 성은 샘물 같이 솟아나는 것이라면 남자의 성은 소나기 같은 것이다. 남자들은 대개 혼자만 즐기는 성생활을 해왔고 여성들은 극도로 억제해온 것이 가정을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여인의 육체는 계란을 다루듯, 보석을 어루만지듯 해야 하는데 우리 남성들은 난폭하게 대했으니 여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원만한 성생활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두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남자는 금방 그쳐버리는 '소나기'가 아니라 꾸준히 내리는 '장맛비'가 되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도쿄미술학교 시절 한 친구가 일주일 내내 여자 친구와 함께 쉬지 않고 즐기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의 비결은 바로 마인드 콘트롤을 통해 성욕을 조절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마인드 콘트롤을 체득하고 있다면 그들의 가정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추상적으로만 설명하고 있으나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관념처럼 남성이 성생활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욕구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감동의 씨앗을 결혼생활에 심어 놓아야 한다. 예술가가 자기 작품의 감동을 찾아 생명을 바치듯, 부부 생활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언제나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성생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기만족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여기에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개성과 역할을 살리고 존중함으로써 행복한 조화를 이룰 때 참된 결혼생활의 행복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는 바로 하모니즘 작품을 완성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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