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은 1989년 니제르 상공에서 폭파된 프랑스 UTA 항공 소속 여객기 탑승객 170명의 유족들에 대한 추가 배상안에 합의했다고 31일 밝혔다.카다피는 69년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를 기념하는 혁명기념일인 이날 국영 TV 방송에 출연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명예이기 때문"이라며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카디피는 31일 오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배상안을 최종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달 27일부터 리비아에서 협상을 벌인 유족 대표들은 "합의안에 대한 서명이 임박했다"는 분위기를 전하며 프랑스로 떠났다. 구체적인 배상금 규모 등은 이번주 초 공개될 예정이다.
프랑스는 이 폭파 사건에 대해 99년 3,300만 달러의 배상을 받고 사실상 '사건 종료'를 선언한 뒤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달 13일 리비아가 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기 폭파 사건에 대해 미국과 영국 측에 27억 달러를 지급키로 하면서 태도가 돌변했다.
카다피는 불과 수일 전만해도 "우리는 협박이나 다름 없는 프랑스의 추가 배상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로커비 사건에 대한 배상을 대가로 미영이 제출한 대 리비아 유엔 경제제재 해제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프랑스의 압력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반대로 제재 해제가 무산되면 27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날리고 미국과 영국만 좋은 일 시키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연간 석유 수출 액수의 4분의1 수준인 27억 달러를 지불하는 대신 제재 해제, 미국과의 관계 개선, 국제사회 복귀,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끌어낼 수 있다면 결국 '남는 장사'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90년대 초 내려진 유엔의 제재로 인한 리비아의 경제적 손실은 최소 300억 달러로 추산되며, 그 결과 리비아는 지역 내 경제 맹주의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대표적 반미 지도자였던 카다피가 서방의 일방적인 요구를 잇달아 전격 수용하는 데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보존하려는 계산도 있다. 같은 테러 지원국에 속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전복을 지켜보면서 위기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미국의 대 테러전 협조 및 무기사찰 수용 의사를 밝히는 한편, 31일 연설에서도 "리비아와 미국은 테러와 독재에 반대하는 등의 공통점이 많다"고 밝히는 등 상당 부분을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할애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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