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갔을 때 처음 느끼는 이질감은 천황 연호를 공식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헤이세이(平成)란 공식연호와 서력기원을 병용하고 있어 불편이 덜 하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현존천황의 연호만 사용해 외국인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령 책이나 문서에 나오는 쇼와(昭和) 몇 년이라는 시기가 서기로는 몇 년에 해당하는지 금세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한동안 고생 끝에 <1900년+쇼와 연도+ 25년>이란 공식을 알았지만, 메이지(明治)와 다이쇼(大正)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막막하기는 또 마찬가지다.■ 연호로 시대표기를 하는 것 못지않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히로히토(裕人=쇼와)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과 향수이다. 쇼와천황기념관 건립공사가 이달 중에 착공된다는 소식이다. 도쿄 다치가와(立川) 시에 있는 쇼와기념공원 안에 세워질 기념관에는 생전에 히로히토 천황 부부가 쓰던 일용품과, 식물학자였던 그의 연구자료 등이 전시될 계획이라 한다. 놀라운 것은 사업 주체가 일본 정부라는 것이다. 완공되면 정치인 경제인 학자 등으로 구성될 쇼와성덕기념재단이 운영주체가 되리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주역의 '성덕(聖德)'을 기린다는 것이 외국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 쇼와 천황에 대한 향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히로히토 천황의 생일인 4월29일은 노장층의 뇌리에 천장절이란 이름으로 깊이 박혀있는데, 전후 식목일(미도리의 날)로 변경됐다가 지난 7월 '쇼와의 날'로 부활되었다. 쇼와 시대의 문물을 상품으로 하는 '하이칼라' 거리와 상점가가 생겨나고, 전쟁중 일본국민이 겪은 고생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쇼와관(館)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1950년대 전후 부흥기를 주제로 한 쇼와박물관이란 것도 불황을 이겨내는 아이디어로 등장해 크게 성공하고 있다. TV에서는 쇼와 시대의 신문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연속극이 히트를 했다.
■ 일본이 이토록 쇼와 신드롬에 빠져든 것은 오랜 불황과도 연관이 있어보인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좋았던 시대가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역설적으로 일본 국민은 패전 후에 살맛을 느꼈다.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경제대국이 되어 어깨를 펴게 되었기에 더욱 그 시대가 그리운 것이다. 위험한 것은 외국인들에게 그것이 쇼와 천황에 대한 그리움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쇼와 천황은 이제 더 이상 히로히토란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고, 쇼와란 연호로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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