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손호철의 정치논평]참여정부 6개월의 소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손호철의 정치논평]참여정부 6개월의 소묘

입력
2003.09.02 00:00
0 0

때로는 체계적인 사회과학적 분석보다 인상주의적 소묘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노무현 정부 6개월을 맞아 언론들이 얼마 전 일제히 '참여정부 6개월'을 평가하는 분석들을 게재했다. 그러나 논리적인 이 분석들보다도 지난 8월 28일과 관련된 네 개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종의 소묘라고 할 수 있는 네 이야기는 28일 언론을 장식한(따라서 27일에 일어난) 세 이야기와 28일에 일어난 한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광양발언과 민주노총의 노 대통령 비판성명, 김수환 추기경의 노무현 정부 평가, 그리고 28일 열린 민주당 당무회의이다.우선 노 대통령은 전남광양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자식들도 별 것도 아닌 문제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이 현실"이라는 문제발언을 했다. 물론 이는 청와대가 해명했듯이 검찰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이날 발언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 대통령의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언이다.

노 대통령이 정말 국민들이 경제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대통령의 아들들이 수억원의 부정한 돈을 받아 베란다에 쌓아 놓고 흥청망청 써댄 게 별 것도 아닌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호남민심을 고려해 노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이는 더욱 한심하고 천박한 포퓰리즘이자 호남을 우습게 보고 모독한 것이다. 한 마디로, 대통령이 또 불필요한 말실수를 해 먹이거리를 찾고 있는 일부 언론에 좋은 일만 시켜 준 것이다.

민주당 당무회의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이 당에서 손을 뗌으로써 3김식 사당정치와 단절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신당문제를 결정할 전당대회건을 최종 결정할 민주당 당무회의는 시정잡배들의 욕설경연장으로 변질해 다시 한번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동교동계의 김옥두 의원은 권노갑씨의 비자금이 "수도권과 영남지역에 집중지원됐다"며 신당하면 "내가 어떻게 하는가 보라"는 자해공갈단식의 협박을 가하기까지 했다.

이 두 에피소드가 각각 노 대통령과 민주당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 김 추기경과 민주노총의 발언은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김 추기경은 군사독재 시절 우리를 이끌어온 시대의 양심 중 한 명으로 극우냉전 세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 자신의 말대로 "구세대"로서 남북문제 등과 관련해 보수적인 입장에서 노 대통령에 대해 불안감을 표현하면서 "대통령의 소신이 확고"한 만큼 불안감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자꾸만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진보적인 민주노총 역시 노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 등과 관련해 민주노총을 비판하자, 노동문제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는 노 대통령이 스스로 노동문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선무당이 노동자 잡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민주노총으로부터 추기경에 이르는 다양한 세력들이 모두 노 대통령에 불안해 하며 비판을 하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대통령의 독선을 걱정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대통령은 말실수하고, 여당이라는 민주당은 신당문제로 저질 싸움만 하고 있고, 보수세력과 구세대 그리고 진보세력은 그 나름대로 불만을 갖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것이 참여정부 6개월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물론 이 같은 소묘는 소묘일 뿐 당정분리, 권력기관의 중립화 등 참여정부의 성과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 성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인기가 왜 저조한가를 설명해주는 해답을 쥐고 있다. 때로 중요한 것, 사람들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인상주의적 소묘이기 때문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