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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지식]<25·끝> 가야산의 活佛 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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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지식]<25·끝> 가야산의 活佛 성철

입력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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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종정이 되신 뒤 한 번도 세상에 나와 직접 가르침을 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내 생각으로는 자네들이야 말로 개인주의자들 같은데."

―어째서 그렇습니까.

"50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네는 자신의 부모, 처자식과 똑같이 이웃을 돕겠다고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참으로 순수하게 남을 위해 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님네들이 출가한 까닭은 작은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함일세. 내 부모와 형제는 작은 가족이란 말이지. 이들을 버리고 떠난 목적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 때문이야. "

―스님의 말씀이 퍽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닐세. 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에 모두 그렇게 씌어져 있네. 남을 위해서 살라고. 몸과 마음, 그리고 물질로 남을 돕는 것, 이 것이 바로 보시 아닌가." 서울의 한 명문대 교수와 성철 간에 오간 대화다. 성철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세상과 거꾸로 사는 종교가 불교다. "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퇴옹성철(退翁性徹·1912∼1993)은 신동소리를 들으며 성장한다. "공부는 사람의 도리를 알기 위해 스스로 하는 것 입니다." 겨우 다섯 살 된 어린이가 부친에게 한 말이다. 성철은 단성보통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의 죽음을 접하고 생사의 허망함에 잠긴다. 긴 고뇌와 방황의 싹이 튼다.

스물 넷의 청년은 해인사에서 출가한다. 부모와 아내를 배려해 '당분간'이라는 사족을 달고 떠난 성철은 생전에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스승 동산은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를 내린다. 성철은 장좌불와(長坐不臥)를 무의 비밀을 타파하는 방편으로 삼는다. 훗날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 장좌불와의 전설은 이때 시작된 것이다. 1940년 여름 성철은 마침내 무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 반야의 빛을 찾은 것이다.

성철이 견성의 공간을 확보해가는 동안 딸 수경이 태어난다. 진주사범학교를 나온 수경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출가한다. 성철이 지어준 불필(不必)의 법명에는 진한 부성애가 녹아 있다. 출가를 앞둔 석가가 갓 태어난 아들에게 라훌라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듯이. 라훌라는 장애라는 뜻이다. 성철의 부인 또한 입산하여 일휴(一休)의 법명을 받는다.

"부처님에게 절을 한 번 해도 '일체중생이 행복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원을 세워야 한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삼천배를 해야 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 대신 부처님을 찾으시오, 하는 뜻에서 삼천배를 하라는 것이다. 남을 위해 절을 하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구도의 마당에 학생이나 지도교수라고 무슨 차별이 있는가." 여름방학 때 학생들을 데리고 문경 김용사를 찾은 동국대 교수 박성배에게 성철의 할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몇푼 어치도 안 되는 지식을 갖고 남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지금은 세계적인 불교학자가 된 박성배(미국 뉴욕주립대교수)의 3천배에 대한 술회다.

"불공이란 남을 도와주는 행위이지 절에서 목탁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절은 불공을 가르치는 곳이다. 불공의 대상은 절 밖에 있는 일체중생이다." 성철은 이런 법문을 하는 바람에 "스님네들은 다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는 항의를 많이 받았다. 성철에게 절과 불공은 참회와 자기환기의 수단이었다. 무엇보다 목탁은 전등이 그 생명이다. 세상에 바른 법을 전해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도구가 목탁인 것이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족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 속의 잠꼬대 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오, 이 세상이 본래 구족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의 법어들이다. 사람은 순수한 자기의 본 모습을 잊고 살아간다. 인간소외와 인간상실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죄수와 술집여인까지 부처로 받든 성철의 안목은 경이롭다. 비록 신분에 제약이 있지만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철은 그토록 쉬운 언어로 토해냈다.

"노자와 공자가 손을 잡고 석가와 예수가 발을 맞추어 뒷동산과 앞뜰에서 태평가를 합창하니 성인 악마가 사라지고 천당 지옥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소리 요란하니 검다, 희다 시비싸움은 꿈속의 꿈입니다." 어느 해 신년법어는 종교화합을 염원한다. 어떤 신앙을 갖던 궁극적으로 진리는 같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성철의 법문과 법어는 투명한 지혜에서 우러나온 육성이다.

성철은 단번에 깨달음에 도달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선가의 적자로 선언한다. 당연히 깨달음 뒤에도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배격한다. 성철의 선언은 90년대 '돈점논쟁'을 불러일으켜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촉매 역할을 했다. 종권다툼과 잿밥싸움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불교를 소생시킨 명약이 된 것이다. 돈점논쟁은 성철의 저서 '선문정로(禪門正路)가 단초를 제공했다.

성철은 돈오의 감정기준도 제시했다.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선객의 자기점검법이다. 동정일여는 일상생활에서 변함없이 화두참구가 이뤄져야 함을 말한다. 이 경계에 이르러도 잠 들어 꿈을 꾸면 화두는 사라지고 딴 짓 하고 놀게 된다.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화두의 끈을 놓지 않는 경지가 몽중일여다. 마지막으로 깊은 잠에 들더라도 깨어있을 때처럼 수행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오매일여다. 돈오는 오매일여의 경지마저 넘어야 성취된다.

입적 당일 새벽 성철은 상좌 원택을 비롯, 제자들을 퇴설당으로 불렀다. 스승 동산과 첫 만남을 이룬 곳이자 삭발을 단행한 성철의 공간이었다.

태어남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반야의 빛을 중생에게 비춰주던 성철은 옛 게송처럼 불생불멸의 여로에 올랐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도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1월1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정 추대식에 성철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측근을 시켜 종이 쪽지를 전했다.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는 취임법어가 적혀 있었다. 성철은 93년 11월4일 입적하는 날까지 가야산의 해인사를 벗어나지 않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山是山兮 水是水兮·산시산해 수시수해)

해와 달과 별이 일시에 암흑이구나(日月星辰一時黑·일월성신일시흑)

만약 이 가운데 깊은 뜻을 알고 싶다면(欲識箇中深玄意·욕식개중심현의)

불속의 나무말이 걸음걸음 가는 도다(火裏木馬步步行·화리목마보보행)

'산은 산이요…'의 뒷 구절은 세간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철의 광대무변한 깨달음의 세계를 엿 볼 수 있는 게송이다. 전혀 인위적인 것이 가해지지 않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첫 연에 담겨져 있다. 선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중국 송시대의 대문장가 소동파(蘇 東坡)는 '깨끗한 물소리는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산 빛깔 또한 부처님의 청정신(淸靜身)'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반야의 빛이 얼마나 찬란하고 밝으면 해와 달과 별까지도 그 빛을 잃겠는가. 불속의 나무말은 유마경의 언어를 빌린 것이다. 불속의 연꽃(火中蓮·화중연)이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희유한 것, 즉 깨달음을 일컫는 비유다.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일컫는다. 온갖 분별이 끊어진 나무말을 얽어맬 번뇌의 쇠사슬은 없다. 그 나무말의 걸음걸음은 거침없이 피안의 세계로 향한다. 걸음걸음마다 절대진리의 혜등(慧燈)이 빛을 발하고 있다.

취임법어는 심경일여(心境一如)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관과 객관, 나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일체를 이룬 경지다. 나와 남, 마음과 우주의 삼라만상이 별개로 존재하면서 대립할 경우 진실은 모습을 감추고 만다. 번뇌망상의 먹구름을 걷어낸 자리에만 본지풍광은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1912.2.19. 경남 산청출생, 속성은 합천(陜川) 이(李)씨

1935.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 법호 퇴옹, 법명 성철

1940.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대오(大悟)

1947. 봉암사결사 주도

1967. 해인사 해인총림 방장 취임

1976. '한국불교의 법맥' 출간

1981. 조계종 종정 취임, '선문정로'출간

1993.11.4. 세수 82, 법랍 59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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