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3년간 주식투자로 5,300억원 손실.'매년 정기국회 및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의원들의 단골성 폭로 메뉴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손실이 가장 큰 기간만을 따로 잡아 재정 손실을 부풀리고, 어떻게든 방어하는 정부와 운용사는 그나마 이익이 많이 난 기간을 잡아 오히려 "수익이 좋다"고 반박한다. 사실 올 한해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의 주식 위탁투자 수익률은 24.44%나 된다.
또다시 소모성 논쟁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각종 연기금의 수익성 확보 및 증시 활성화를 위해 내년부터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키로 하고 9월 정기국회에 '기금관리기본법'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은 재정 안정성을 해친다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외국인의 시가총액 비중이 38%로 우리 증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데도 국내 가장 큰 기관투자가인 연기금은 해묵은 주식투자 확대 논란으로 절름발이 걸음을 하고 있다.
주식 비중 6.8%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자산은 올 6월말 현재 101조원으로 국내 총생산(GDP)의 16.7%에 달한다. 이 가운데 73조원을 국공채 등 채권에 투자하고 6.8% 정도인 7조1,000억원만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채권시장(633조원)의 11.5%를 차지하는 최대 '큰손'이지만 증시에서는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 오래다. 국가별 금융시장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요 선진국들의 연기금이 30∼50% 안팎의 주식 투자비중을 유지하고, 나아가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주무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식 늘려야" 對 "안된다"
2030년까지 약 650조원으로 불어날 국민연금 적립액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운용 형태와 운용 주체를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 기획예산처와 복지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연금 재정파탄이 문제돼 '더 걷고 덜 주는' 쪽으로 연금체계를 바꿔야 하는 만큼 수동적이고 방어적 운용보다는 주식 비중을 늘리는 공격적 운용을 통해 수익창출을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또 주식 투자 확대를 통해 국내 증시의 취약한 기관투자가 기반을 다지는 '두마리 토끼잡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인 한나라당은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의 목적은 주식 투자를 자의적으로 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증시를 부양하려는 의도"라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도 투자 손실을 우려, 주식투자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재경부와 예산처는 나아가 국민연금 운용 담당 조직을 복지부에서 분리해 총리실 산하로 옮기고 민간 전문가들을 추천해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투자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획예산처 김병덕 기금정책 심의관은 "세계적 저금리 기조아래서 주식 포트폴리오 확대는 필수적"이라며 "몇가지 부작용은 국민연금 운용 방식 개선과 성과평가제도 개선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는 국민이 맡긴 돈인 만큼 '안전성 최우선' 원칙 아래 자산을 굴려야 하고 국공채 등 안전한 투자처를 찾으면 별도 운용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이 복지부에 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최근의 금융시장 환경변화를 무시한 채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민간 전문가에게 기금 운용을 맡겨 수익창출은 물론, 자본시장 방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