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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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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달걀

입력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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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게 비행기를 기다리다 보면 평소엔 안 보던 것도 유심히 보게 된다. 며칠 전에 본 프로그램은 해양 탐사 다큐멘터리였다. 공항 라운지 같은 데서 틀면 모두 불만 없을 그런 프로그램이다. 바다 속에 자주 들어가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 남들이 무거운 장비 들고 대신 들어가 멋진 그림을 보여주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형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온 몸이 붉은 백인 남자들이 나와서 해양 탐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다야말로 지구의 보고이며 우주보다도 더 먼저 정복해야 할 대상임을 설파한다. 그럼, 그럼. 다 맞는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멋지게 바다로 뛰어든다. 이상하게 그들이 뛰어든 바다엔 늘 산호초와 말미잘이 있다. 그렇지 않은 바다도 많을 테지만 그런 데로 자꾸 뛰어들면 시청자들이 외면하고 결국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스쿠버 다이빙을 더 이상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프로그램은 진행된다. 그 뻔한 프로그램의 말미에 한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달걀을 들고 나타났다. "이 달걀을 저 심해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강한 압력에도 달걀은 터지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바다의 신비일까, 아니면 달걀의 신비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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