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刻字)는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입니다. 붓 대신 칼을 쥐고 글자의 한 획 한 획을 새기는 과정은 수도에 비할 수 있지요."중요무형문화재 106호 각자장 기능보유자인 철재(鐵齋) 오옥진(69)씨는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넣는 각자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이다. 증조부 때부터 4대째 기능을 이어오며 평생을 목공예로 살아온 그가 고희를 맞아 '새김 작업' 을 총결산하는 도록을 내고 4∼30일 서울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제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연다.
전수회관 3층 자신의 공방에서 여름 내내 전시 준비에 몰두해 온 그는 "1957년 국립중앙직업보도소 목공예과에서 칼을 잡은 후 46년 간 내 손을 거쳐간 주요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199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그의 작품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훈민정음(33판), 농가월령가(68판), 고려가요(56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수선전도(首善全圖·서울의 지도 목판) 등 멸실 위기를 맞은 국보와 보물이 그의 손으로 되살아 났다. 또한 경복궁 흥례문 등 서울 4대궁의 현액과 송광사 화엄사 금산사 등 고찰, 독립기념관 국립국악원 현충사 국어연구원 등 주요 기관과 건물에 걸려있는 현판이 그의 작품이다. 또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씨 23점을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대통령의 글씨도 새겨 주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는 물론 정치인 기업인 등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그의 손을 빌려 '흔적'을 남기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오씨는 소전 손재형의 글씨를 옮기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손 선생님 글씨에는 비백(飛白·글씨의 점획이 비로 쓴 것처럼 갈라지게 쓰는 필법)이 많거든요. 손 선생님은 그것을 그대로 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각자는 "단순히 도장을 파듯 기계적으로 나무를 새기는 작업이 아니라 글자를 수정·보완하는 창조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먼저 나무와 연장을 다룰 줄 알고, 한문과 서예까지 섭렵해야 비로소 가능한 종합예술이라는 것. 그도 1970년 신학균씨로부터 전통 각자법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김충현 임창순 선생에게서 각각 서예와 한문을 배웠다.
여러 사람의 글씨를 새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을 비교하고 평가해 보게 됐다는 그는 전직 대통령들의 글씨에 대해 흥미로운 평을 들려 주었다. "김충현씨에게서 서예를 배운 전두환 대통령은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 체를 제대로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재형씨의 지도를 받은 박 대통령이나 다른 대통령의 글씨는 크게 내세울 만한 게 못됩니다."
"이제는 작은 작품 하나도 2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그는 그 동안 칼과 망치를 잡아 생긴 상처투성이의 손을 보여주었다. 오른 손 검지는 30여년 전 전기톱에 1㎝정도 잘려 나갔고, 왼손은 온갖 흉터가 남아 있는 데다 손톱이 깨져 성한 데가 거의 없다.
"팔만대장경 뿐만 아니라 중국의 서책을 판각으로 남기는 우리 기술에 놀라 송나라의 소동파 시인은 '고려에 책을 팔지 말라'는 상소까지 올렸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컴퓨터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손 맛을 살려내면서 현대적 감각에 어울리는 각자 작품으로 선조들의 기술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글·사진=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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