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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94>런던 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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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94>런던 대화재

입력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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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 9월2일 일요일을 런던 시민들은 불길 속에서 맞았다. 새벽 2시께 런던브리지와 런던탑 사이의 푸딩 거리 한 제과점에서 처음 타오른 불길은 기다란 가뭄 속의 여름을 막 보낸 런던시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왕실에 빵을 납품하던 이 제과점의 주인 토머스 페리노어는 그 전날 밤 10시에 자신은 분명히 화덕의 불을 끄고 퇴근했다고 뒷날 증언했지만, 그는 거짓말을 했거나 불을 꼼꼼히 끄지 않았을 터였다. 아무튼 그 뒤 닷새동안 런던을 집어삼킨 이 화재의 첫번째 희생자는 그 제과점에서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페리노어의 조수였다.사람들의 야단법석 속에서 새벽 3시쯤 잠이 깬 런던 시장 토머스 블러드워스는 창 밖으로 화재 현장을 보고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침대에 다시 눕기 전에 "여자 한 사람이 오줌 누면 꺼지겠군!" 하고 내뱉었다고 한다. 그러나 블러드워스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잠에서 깼을 때, 그의 도시는 템스강의 물을 통째로 부어도 꺼질지 말지 알 수 없는 대화재를 겪고 있었다.

몸소 진화 작업에 나선 국왕 찰스2세를 포함한 런던 시민 전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9월6일에야 겨우 잡혔다. 그 사이에 이 도시의 상징이었던 성바울로 성당을 비롯해 87개의 교회가 불타 없어졌고, 런던 거래소와 세관을 포함해 영국 경제의 실핏줄을 이루던 기관과 회사 건물들 다수가 잿더미로 변했다. 템스강의 다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전해 5만 명 이상의 시민을 페스트에 잃은 런던은 이제 외양으로도 거의 폐허가 되었다. 이 화재로 노숙자가 된 사람은 10만 명이 넘었다. 그러나 대화재 속에서 런던 시민들은 기적 하나를 목격했다. 런던이 불타고 있던 닷새 동안 죽은 사람이 여덟 명 뿐이었던 것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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