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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폴러첸에 박수치는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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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폴러첸에 박수치는 무리

입력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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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독이 적대하던 동독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한 것은 동독 체제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냉전의 벽을 넘어 화해와 교류를 추진한 브란트 총리는 '접근을 통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뒷날의 현인 (賢人) 대통령 폰 바이체커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나뉜 것은 오직 나눔으로써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서독 사회에도 반대론은 적지 않았다. 동독 체제의 정당성과 존립 기반을 강화해 주고, 공산 압제에 시달리는 동독 주민의 고통을 영속화할 것이란 논리였다. 그러나 국민 다수는 "동독 주민은 민족사의 변전(變轉)에 휩쓸려 불운한 쪽에 처했을 뿐"이라는 역사적 안목과 심정적 호소에 공감했다. 많은 동독 주민이 공산 체제에 동화했고 그 단절을 다시 이을 통일의 전망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동포의 도리라는 인식이 지배한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 동독 체제가 안정되는 것까지도 민주적 변화에 도움될 것으로 보았다.

진부한 독일 얘기를 앞세운 것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주변을 어지럽게 한 독일인 노르베르트 폴러첸의 언행을 제 나라 민족 문제에 비춰 살피자는 뜻이다. 서독 출신인 그가 동독과의 교류·지원에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알려지진 않았다. 다만 그는 서독 정부가 통일 전 동독주민의 집단 망명을 막고, 서독 언론이 이를 지지한 것을 비판했다고 한다. 집단 망명이 동독 체제의 취약성을 노출시키고 그 붕괴를 앞당길 것이기에 마땅히 부추겼어야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상기할 것은 이런 논리로 동독 지원을 반대하고, 인권 상황 등 체제 비판에 앞장 선 세력이 막상 통일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통일 반대' 플래카드를 높이 쳐든 사실이다. 이들이 급격한 통일에 반대한 명분은 막대한 비용 부담과 동서독 주민간의 이질감 따위였다. 그러나 바이체커를 비롯한 지각있는 지도층과 언론은 "불안한 대치 속의 풍요가 더 좋다는 말이냐"고 통일 반대론자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나무랐고, 그 것이 곧 사회적 합의가 됐다.

서독에서 알코올중독 전문의로 일했다는 폴러첸이 갑자기 북한 주민을 돕겠다며 북한으로 간 것은 일단 선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북한 당국과 충돌해 추방된 뒤, 북한의 인권 상황 폭로를 명분으로 과격한 돌출 행동을 거듭하는 동기를 선의로 봐 주기는 어렵다. 독일에서도 보였다는 자해적 시위와 과대망상적 거짓 언행도 사명감에 겨운 탓으로만 볼 수 없다.

그는 남과 북에 중요한 고비마다 해프닝을 벌였다. 서방 기자들을 북한의 허가없이 평양의 열악한 병원으로 데려가 말썽을 일으킨 것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북미 관계에 획기적 돌파구가 기대되던 때였다. 그는 또 미국의 대북한 압박이 거세질 때마다 탈북자 망명 사태를 연출했다. 월드컵 때는 북한 주민 수천명의 해상 탈출 쇼를 거짓 예고했고,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혼란스러울 때는 잇단 북한 요인 망명설을 퍼뜨리는 데 가담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주변에서 라디오 풍선날리기와 반김정일 시위로 파란을 일으킨 것은 그의 행동이 북한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스포츠 행사를 정치적 시위로 어지럽혔다는 원칙론적 비판을 넘어, 뒷걸음질 치는 남북관계에 화합 무드가 모처럼 되살아 나는 것을 방해한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폴러첸의 행동을 뒷전에 앉은 채 즐기며 박수치는 세력이다. 미국의 강경 보수파가 폴러첸을 지원한다는 사실은 벌써 알려졌다. 이 땅의 고루한 보수 세력이 폴러첸에 은연중 동조하는 내심은 독일 통일 반대론자들의 이기심과 다름없을 것이다. 북한 동포의 인권을 떠들지만, 한갓 허황된 외국인의 언행에 영합하는 것은 부끄러운 위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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