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 6자회담 이후 미국 대북정책의 방향은 미 정부 내 강·온 세력 간의 기세 싸움을 거쳐 조정될 전망이다.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대화파는 6자회담이 북한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유용한 틀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써 당분간 강경론을 잠재울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무부가 김영일(金永日) 북한 대표의 핵 보유 및 핵실험 강행 의사 표명을 4월 베이징 3자 회담의 재탕으로 평가절하하면서 6자회담의 '진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회담 참가국 뿐 아니라 내부를 향하는 측면이 있다.
1994년 제네바 핵 합의 과정에 미국 대표단으로 참여했던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대북 제재를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 정부 내 매파들 뿐 아니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핵 개발의 필요성을 주지시키고 있는 북한 내부 강경파 모두의 목소리를 약화시킨 것이 이번 회담의 큰 성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격 가능성은 여전하다. 강경파의 일부가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거두절미하고 북한의 위협 발언만을 미 언론에 흘림으로써 이미 대화론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를 했다는 관측도 있다.
강경파의 이런 도전이 6자회담으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깨지는 못하겠지만 대북 대화론자들의 보폭을 줄이는 쪽으로 작용할 여지는 크다. 현재까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귀는 온건파 쪽에 열려 있다. 그러나 북한이 후속 6자회담의 참가를 미루며 장외 협박의 수위를 높일 때 강경론이 다시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한반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릴 킴벌 미 군축협회 사무총장은 "북한의 위협적 언행은 강경파에게 협상무용론을 펼 빌미를 제공했다"며 "북한은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될수록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물보다는 채찍을 앞세우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나 핵 실험이 현실화할 경우 현재의 대화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킴벌 사무총장은 이 단계에서는 북미 대화의 모멘텀은 사라지고 대북 강경론자들이 주장해 온 대로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 수순으로 직행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도 31일자에서 북한이 추후 회담에 관심이 없다고 한 북한 대표단의 말을 언급하며 "이것이 북한의 상투적 과장전략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심각한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김정일이 미국은 이라크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보고 지금이 자신의 핵 보유를 명백히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는 한 미국 관리의 말을 전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