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이 계속되고 있는 6자회담 결과에 대한 평가와 회담 이후 핵 문제에 대한 전망을 한·미·일의 전문가로부터 동시에 들어보았다. 다음은 한국일보가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게이오(慶應)대 정치학과 교수, 김성한(金聖翰)외교안보연구원 교수와 각각 가진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편집자주
케네스 퀴노네스 미국 하버드대 박사 터프츠대 교수 미 인터내셔널센터 한반도 실장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 연세대 객원 교수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센터 연구원
김성한 고려대 영문학과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미국정치연구회 회장
―언론발표문조차 채택하지 못한 6자회담에 대한 평가는.
퀴노네스 전 담당관=전체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고, 북미간에 해결의 외교적 돌파구가 확실하게 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후 북미가 사실상 대화를 단절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북미간 첫 실질적 대화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오코노기 교수=지금 단계에선 성공이라고도 실패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6자협의의 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성과를 올릴 수 있는지는 다음 회담을 봐야 안다. 이번은 본 회담이라기보다 준비회담에 불과하다.
김성한 교수=미국과의 회담만 주장해온 북한이 다자 틀에 참여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공조를 끌어낼 수 있었다. 다자틀이 당분간 유효하다는 점이 분명해진 만큼 성과를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의 예상되는 대응은.
오코노기=북한은 적어도 2차 회담 때까지는 자신들이 불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2차회담 때까지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 실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회담을 서두를 것이라는 분석은 섣부른 것이다. 당분간 이라크에서 미군은 발을 빼기 어렵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나 전쟁은 어려워졌다. 이번 회담도 북한 입장이 반영된 주최국 요약문이 나오는 등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잘 해낸 셈이다. 북한은 미국 정권 교체기에 다이내믹한 외교를 전개해왔다.
퀴노네스=미 정부 내 매파 한 두 명이 북한 대표 발언과 관련한 미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회담 참가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대화 기회를 깰 만한 위협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강경파들은 힘이 있지만 그들도 다자 회담이 평양 당국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기 시작했다고 본다. 한국과 중국 일본 정부는 지금 워싱턴의 강경파뿐 아니라 북한 강경파의 목소리를 낮추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북미 강경파들은 앞으로도 서로 의심하면서 심지어 대화 분위기를 깨려는 움직임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진정으로 외교적으로 북한 핵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 같다.
김성한=북한의 입장은 상당히 수세적이다. 하지만 내년 미국 대선 때까지 버티기 전략으로 나올 것이다. 내년 11월까지 시간끌기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정권 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6자회담의 판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핵 억제력을 강조하는 등 화전 양면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한국과 미·일의 입장차가 노출된 것 같다. 한국의 협상 전략을 평가해달라.
오코노기=한국은 미·일보다는 중·러에 가까웠다는 느낌이다. 평화적 해결이 지상명령이라는 한국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렇게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는 것이 평화해결이라는 결과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전략인지 의문이다.
김성한=미국이 한국의 3단계 로드맵과 유사한 해법을 얘기한 것은 한국의 가장 큰 성과다. 그러나 한미일 3국간에 다소 입장 차이가 드러난 것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 그리고 중·러와의 협조에 무게를 둘 경우 미·일에 대한 발언권이 도리어 저하되고 심지어 제3자의 입장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높다. 미국과의 연계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것이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이 거둔 성과는 무엇이고, 앞으로 대북정책은.
퀴노네스=미국은 북한과 다자회담 구도에서 대화를 이어가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진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 쉽게 협상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보다 진지한 자세를 보일 때 북한의 안전보장 요구에 답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미국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대북한 경제지원, 지원원조 등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간에 협력이 긴요하다.
오코노기=미국은 정부 내에 강경파와 온건파가 갈라져 있는 것이 문제다. 조정된 대북정책이 없다. 이것이 북한에게 유리한 점이다. 이번 회담도 미국 페이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 포기를 요구하면서도 플루토늄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아 눈감아 주고 있는 것 같은 결과를 낳았다. 사용 후 핵연료봉 8,000개는 다음 회담 때까지 재처리가 끝날 수 있다. 부시 정권 내에서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마추어적인 생각으로 북한을 위협하기만 하면 될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새해 들어 미 대선 선거전이 시작되면 선거에 대북정책이 좌우된다. 이라크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엄청난 희생이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는 것을 유권자들이 수용하겠는가.
김성한=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적인 행위를 통해 6자회담을 조기에 좌초시키려 할 경우다. 미국 내에서는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유엔 안보리에서의 논의에 이어 단시일 내에 제재국면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상황이다. 둘째는 특별한 진전이나 성과 없이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인데 이 경우 미국은 이라크 문제의 전개 추이와 국내 경제 문제의 호전 정도에 따라 다르게 대응할 것이다.
―다음 6자회담이 열릴 때까지의 상황을 예상해달라.
오코노기=2차 회담은 늦어도 올해 안에는 열릴 것으로 본다. 북한이 너무 길게 연기하거나 6자회담 이탈을 선언하면 북중관계가 악화한다. 2차 회담이 북핵 문제의 기로다.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너무 달라 보이지만 다음 회담 때까지 타협 가능성이 있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퀴노네스=미국은 북한의 선 조치를, 북한은 동시 이행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협상을 원하지만 미국은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입장에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하기는 이르다. 나는 미국이 현재의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협상을 거부하면 할수록 김정일은 핵 억지력을 보유하려 들 것이다. 가능한 한 서둘러 그런 북한의 그런 과정을 중단시켜야 한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전혀 다른 게임을 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평화 협정을 맺고 북한을 국제사회에 노출시키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성한=현재로서는 북한이나 미국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우선 미국은 대화가 열리지 않는 동안에는 유엔 안보리와 PSI 확대를 도모하는 등 압박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중재 노력을 하겠지만, 일본은 대북 강경책을 고수할 것이고 러시아는 지렛대를 갖고 있지 못해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2차 회담 시기를 다소 늦추는 등 기본적으로 6자 틀을 깨지는 않되 최대한 시간 끌기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서울=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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