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소위 도를 닦아서 세상살이에 거침이 없다는 분들도 가끔씩은 화가 불쑥 올라옴을 피할 수 없다. 세상이 험해서, 자신에게 실망해서 화가 난다. 화를 잘 내지 않는 듯 보이는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화를 내지 않는 것뿐이다. 화 또는 분노라고 하는 감정은 아주 흔히 느끼는 감정이다.의료계에서는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화를 다스리는 지혜를 책으로 써서 인기를 모은 미국의 정신과교수도 있다. 그 책 제목은 흥미롭게도 '분노가 당신을 죽인다'이다. 화를 잘못 내면 그 탓에 병이 들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분노는 혈압을 올리고, 심장을 빨리 뛰도록 하며, 부정맥을 일으키는 등 심장이나 뇌를 포함한 심혈관계에 특히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화가 나면 손이 차가워지는 경험을 흔히 하는데 손에 있는 혈관들이 닫히기 때문이다. 따뜻한 피가 공급되는 양이 줄어드니 손이 차가워질 수 밖에 없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20세기 전반부터 관상동맥이 막혀서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환자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성격적으로 특징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조급하고, 걱정이 많고, 경쟁적이며, 성취지향적이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양상을 'A형 성격'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분노라는 점도 밝혀졌다.
그러면 무조건 화를 참는 것이 약인가? 그렇지 않다. 화를 덮어놓고 참아도 병이 생긴다. 화는 적절한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물론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건강에 해롭다. 중용지도(中庸之道)가 중요한 것은 화를 다스리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의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횡경막을 이용한 복식호흡이다. 횡경막은 가슴과 배의 경계구역을 평평한 형태로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근육으로 복식호흡용 엔진과 같다. 복식호흡은 교감신경을 둔하게 하고 부교감신경을 자극한다. 쉽게 말하면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해주고 관상동맥을 크게 열어준다는 뜻이다. 둘째, 그래도 안 풀리면 과연 화를 낼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 본다. 없다면 무시하고 넘어가자. 셋째, 화를 낼 수 밖에 없다면, 가장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재치있는 말로 화를 표현해서 상대방이 무색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화가 날수록 침착해져야 한다. 화를 못 이기고 혼자서 펄펄 뛴다면 심장마비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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