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청년들의 축제인 2003대구유니버시아드가 31일 막을 내렸습니다. 11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한 참가와 관련, 대회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조직위 관계자나 취재진에게는 너무나 멀고 기나긴 여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보수단체와 북한 기자단의 충돌, 그리고 미녀응원단 신드롬 등을 목격한 U대회 특별취재반은 후일담과 함께 북한이 남기고 간 메시지를 중심으로 이번 대회를 되짚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방담에는 체육부 여동은 최형철, 사회1부 정상원, 사회2부 전준호 정광진 기자가 참석했습니다.여동은=대회 기간 내내 북한이 어떤 돌출 행동을 할지 몰라 조마조마했습니다. 특히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밤낮없이 뛰었던 대회 관계자들과 시시각각 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해야 했던 기자들은 솔직히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꿈에 나타났다는 동료 기자도 있습니다.
정상원=지난달 17일 북한 선수단을 마중하러 김해공항에 나갔던 박상하 U대회 집행위원장은 돌연한 비행 취소 통보 전문을 받았을 당시 표현하기 힘든 충격에 빠졌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26일 전극만 총단장이 재차 대회 불참을 시사했을 때는 주변의 권고로 강심제까지 먹었다고 합니다. 이 때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박 집행위원장이 전 총단장의 숙소로 찾아가 2시간 가까이 통음을 하면서 설득 작업을 펼친 일은 널리 회자가 됐습니다.
전준호=저도 대구사람인데, 이번 대회를 통해 대구가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 시민들조차 보수단체의 시위에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시위 내용에 맞장구를 쳤겠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손님 초대해놓고 무슨 짓이냐"는 질책이었습니다.
최형철=경기장마다 만원 인파를 몰고 다녔던 미녀응원단의 인기는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는데요. 응원단 리더 4명 중 하나인 김현희 인기는 대단했어요. 개막 이틀째인 22일 오후7시 남자배구 북한―우크라이나전에 벌써 김현희 팬클럽이 경기장에 등장했을 정도니까요. 이들은 응원단 맞은 편에다 김현희의 사진과 '현희씨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새긴 대형 현수막까지 내걸었습니다.
정광진=북한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이었는지 29일 달서구 두류공원 내 야구장에서 열린 남북공동문화예술행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한 하진규 사무총장 등 조직위 관계자들도 1만여명의 인파에 밀려 뒷문으로 입장해야 했습니다.
정상원=그러나 대회가 지나치게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지구촌 화합의 젊은 축제라는 의미가 퇴색된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연은 북한, 무대는 대구, 나머지는 들러리'라는 하소연도 들리곤 했지요.
전준호=무엇보다 28일 예천양궁장 입구에서 비에 젖은 "장군님" 사진에 대한 미녀응원단의 반응은 결코 뇌리를 떠날 수 없는 서글픈 장면이었습니다. 북한 대표들을 환영하기 위해 플래카드를 내걸었던 지역주민들 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미녀응원단의 돌출행동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여동은=그런 현실조차도 우리가 떠안아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남북의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요. 그 단절의 골이 클수록 '하나가 되는 꿈'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염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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