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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93>KAL기 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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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93>KAL기 피격

입력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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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1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사할린 남서쪽 모네론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여객기가 일본 자위대의 레이더 스크린에서 사라진 것은 오전 3시38분이었다. 추락한 여객기에는 한국인 승객 81명을 포함해 269명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미국 하원의원 래리 맥도날드는 극우 단체인 존 버치 협회의 회장이기도 했다.비무장 민간항공기를 공격해 끔찍한 참사를 초래한 소련 군부에 대해 즉각 국제적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한국과 국교가 없던 중국까지도 소련군의 민항기 격추를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비난했다. 다수의 자국 승객들이 희생된 미국·일본과 소련의 관계는 크게 냉각됐고, 민간 차원에서는 국제조종사협회연맹이 60일간 모스크바 취항을 중단한다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은 보잉 747기가 항행등을 켜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항로를 바꾸라는 여러 차례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는 여객기가 소련 영공으로 들어온 것이 단순한 실수는 아닐지 모른다는 함축이 담겨있었다. 그 즈음 국제 저널리즘 일각에서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의 방공(防空) 태세를 시험해보려는 미국측의 비밀 작전에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동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주장이 가정하고 있는 미국 군사정보기관의 비윤리성이 평균인의 상상을 훌쩍 초월하는 것이어서, KAL기의 첩보 활동설은 사람들을 거의 설득하지 못했다. 첩보 활동의 개연성을 지지하던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의 대표적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인 노엄 촘스키도 포함돼 있었다. 진실이 어느 쪽에 있든, KAL기 피격은 국가 이성의 야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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