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72>타래난초의 역발상 생존법 타래난초 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72>타래난초의 역발상 생존법 타래난초 ①

입력
2003.09.01 00:00
0 0

"어머! 어쩜!" 타래난초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감탄사입니다. 처음 감탄사는 전혀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귀한 것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에서 나옵니다. 야생의 난초라고 하면 우거지고 깊은 숲에서 어쩌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 만나는 희귀한 식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사는 공간과 가까운 공원의 너른 잔디밭이나 무덤가, 시골길 옆 자락쯤에서 예상치 못하게 이 풀을 만나는 것에 대한 감격이지요. 두 번째 감탄사는 나사처럼 줄기를 틀며 올라가는 모습과 그 줄기에 끼워지듯이 달려 있는 작고 고운 빛깔의 꽃 모양에 대한 감탄입니다. 보면 볼수록 정교하면서도 고와 눈길을 거두기 어렵지요.식물의 소중함과 가치는 높아만 가는데 식물을 공부하고 더불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죠. 반면 나라 전체로는 청년실업이 늘어난다고 해서 참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타래난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어렴풋하게나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비약인 듯 싶기도 하지만요.

난초과 식물들은 말할 수 없이 정교한 꽃을 가지며 곤충들과 더불어 발달해가는 대신 서식지 조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타래난초는 우선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특별히 가리지 않습니다.

타래난초가 다른 식물들과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이름 그대로 줄기에서 올라온 꽃차례가 실타래처럼 비비 꼬여 꽃이 달린다는 점입니다. 물론 줄기가 꼬이기로는 타래붓꽃도 있지만 그 정도가 타래난초 만큼은 아닙니다.

타래난초는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한 포기에 작은 꽃들이 모여 달려있는 것이 식물을 찾는 곤충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 적합하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했습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이러한 것을 해결하는데 옆으로 퍼진 너른 꽃차례를 만듭니다. 하지만 타래난초는 다른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타래난초를 드나드는 벌들은 작은 벌이랍니다. 꽃이 옆으로 향해 있어야 꽃가루를 옮겨줄 벌들이 꿀을 찾아 꽃 속으로 들어가기가 좋지요. 그런데 이렇게 꽃을 옆으로 향하게 하면서 다른 식물들과 같은 방식으로 꽃차례를 만들려면 분지를 하고 이들을 모아 지탱하는데 에너지도 많이 소모됩니다. 무엇보다도 한쪽으로 치우쳐 식물이 균형을 잡고 바로 서기에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발상의 전환을 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타래난초 꽃 한 송이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니까요.

남들이 하는 직업 구분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고 찾아보면 세상에 직업은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말을 잘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왼쪽으로 꼬였을까. 오른쪽으로 꼬였을까. 이 역시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습니다. 방식을 틀대로 답습하지 않는 것이지요. 첫인상이 여리고 고와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가깝게 열어주게 하지만 본질이 강합니다. 외유내강인 셈입니다. 타래난초의 치밀함과 정교함, 그리고 본받아서는 안 될 약삭빠름은 아무래도 다음주로 넘겨 얘기해야겠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