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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생글" 속으론 "부글"/서비스직에 급증 미소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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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생글" 속으론 "부글"/서비스직에 급증 미소우울증

입력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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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여·35)씨는 백화점 판매 부서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A씨는 판매실적을 올리려고 고객 비위를 맞추다보니 속에서 화가 나고 울화통이 치밀어도 겉으론 웃으며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매사에 의욕이 나지 않는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종에서 감정을 억누른 채 억지로 웃으며 일하다 보니 퇴근하면 말하기도 싫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 가까운 사람에게도 짜증을 잘 낸다. 집에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빈도도 잦아졌다.

회사원 B(37)씨는 고졸 출신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차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관리자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지만 학력좋고 유능한 엘리트 부하 직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해서다. 남에게 약점을 보이기 싫은 B씨는 적극적이고 자신있게 보이기 위해 부하직원의 잘못을 덮어주고 뒷처리까지 도맡아 했다. 그러면서 밤새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자주 잠에서 깼다. 심하면 출근길에 갑자기 배가 아프고 설사까지 한다.

식당, 백화점, 할인점, 호텔, 병원, 관공서 등 거의 모든 직종의 요즘 화두는 '미소 마케팅'이다. 미소 정신을 강조하면서 앞다퉈 서비스 강좌를 유치해 전직원을 교육하고 예쁘게 미소 짓는 연습을 시키기도 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예전처럼 욕쟁이 할머니가 장사를 잘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에 따라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자기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매사 재미와 의욕이 떨어지며 자기 비하에 빠지는 '미소 우울증(smiling depression)'이 크게 늘고 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상대하면서 자기 감정을 꾹 누르고 지내다 보니, 자기가 정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화가 나도 제대로 표현을 못하고 삭여야 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긴다. 이 같은 증세는 종교인, 의사, 간호사, 교사, 공무원, 항공기 승무원,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연예인,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 등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부하직원들을 잘 관리해 성과를 내야하는 간부직 회사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증상?

판매·서비스직 종사자들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판가름난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전제로 고객을 상대하는 근로자는 어떤 손님을 대하든 손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늘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고객이라고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무조건 친근함을 표시하고 미소를 지어야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되고 열등감마저 느끼게 된다. 자신의 미소가 마치 웃음을 파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미소 우울증에 빠지는 가장 큰 요인이다.

대표적 증상으로는 우선 '내가 뭘 느끼는지 잘 모른다'는 것. 기쁘고 슬픈 감정을 제대로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해 심지어 감정이 없어지는 '감정 불감증'까지 생긴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로 인해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심지어 가까운 사람에게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예민해진다. 이밖에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껍데기로 사는 것 같다'는 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신체 증상으로는 식욕과 성욕이 떨어지고 두통과 어깨 통증, 불면증, 복통, 소화불량 등이 나타나고 드물게 고혈압과 당뇨병, 홧병, 피해망상증 등이 생길 수 있다.

대처방법은?

우선 일과 자신을 구분하는 '감정적 격리'가 필요하다. 일은 일이고 자신은 자신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쉬는 시간에는 1인1실을 주어 휴식을 취하게 한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직원들이 하루 종일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일과 이후까지 사람들과 같이 있게 하면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과 관계없는 사람과 만나 정을 나누고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하루 종일 서비스 노동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사람과 부딪치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과 관계없는 친구나 가족 등과 시간을 보내면 이 같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땀을 흠뻑 흘릴 만큼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틈틈이 스트레칭이나 요가 등을 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하면서 자기 암시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스쿼시를 할 때 열 받게 했던 고객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공을 치든지 '내가 이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나는 이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등의 자기 암시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난 정말 재수가 없어.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이 모양이니…'는 등의 생각은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할 뿐이다. 어떤 갈등에 부딪혀도 '저 사람이 무슨 사정이 있겠지', '어차피 사람이라는 게 다 제 나름대로 사는 건데' 등의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미소 우울증이 늘면서 각 대학병원에서는 '바이오피드백 치료' 등 스트레스 관리프로그램을 만들어 치료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피드백 치료는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을 컴퓨터 모니터로 알게 해주어 환자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국내에서는 이 같은 스트레스를 직원들이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하는 수준"이라며 "회사 경영진이 사원들의 정신 건강 증진을 사원복지 프로그램의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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