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74개국 젊은이들이 참가했던 대구 유니버시아드가 어제 막을 내렸다. 스포츠를 통해 지구촌의 우정을 다지는 이 축제에서 남북한은 화합과 갈등이 교차하는 열 하루를 보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는 남북 모두에게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를 남겼다.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여성 응원단을 '핵무기에 이은 비밀무기'라고 표현했는데, 그 비밀무기는 이번 대회에서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의 미녀들이 펼치는 다양한 응원 묘기가 경기장을 달구고, 그들을 보려는 인파가 입장권 판매 수입을 올렸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 처음 응원단을 참가시켜 인기를 모았던 북한은 이번에 더욱 공을 들인 응원단을 파견해 '비밀무기' 효과를 높였다. 그러나 북한 특유의 응원과 정치색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장군님 사진'이 비에 젖는다고 눈물 흘리는 응원단원들의 모습은 박수 치던 사람들조차 손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응원단에 대한 호감은 단숨에 "역시 북한!"이라는 썰렁함으로 바뀌었다. 북한에 있는 그 수많은 동상과 초상화들이 눈비에 젖을 때는 어떻게 견디느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북한이 앞으로 응원단이라는 비밀무기를 대외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라면 시나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북한 인민의 충성심에 감탄할 사람이 지구상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우리측 보수 단체들의 과격한 시위와 인공기 훼손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유니버시아드가 열리는 경기장 앞에서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 인민이 산다"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인 것은 북측과의 충돌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 어느 누구든 북한측 참가자가 그런 표어를 발견했을 때 가만 있을 수 없다는 사정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축제에 충돌을 불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남의 나라에 와서 폭력을 휘두른 북측 기자들은 비난 받아야 하고 경찰의 조치에도 잘못이 있었다. 그와 함께 유니버시아드 경기장을 찾아간 표현의 자유에도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보수집단의 강경시위는 진보집단의 강경시위에서 촉발됐고, 인공기 불 태우기는 성조기 불 태우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이 나라에 진보세력만 있느냐, 친북 반미는 큰소리치는데 반북 친미는 조용히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보수집단의 주장은 당연하다. 나라가 어디로 가느냐는 위기의식, 인공기 불 태우기 등의 강경대응으로 기세를 잡으려는 의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대결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성조기와 인공기를 훼손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도 훼손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심이 갈갈이 찢기고, 서로 삿대질하고, 모두가 황폐해지면서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가.
우익 내지 보수단체의 시위가 경찰의 제지를 받고 대통령과 장관이 인공기 훼손에 유감을 표시하는 현실은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우리 역사에서 우익의 시위란 으레 관제였고,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용공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핍박을 당했다. 반공시위의 물결이 거세던 곳에서 친공 반미시위가 거세게 일고 다시 반공시위가 등장하고 있다. 이제 그 반작용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현명한 국민이 돼야 한다.
이 어려운 고비에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북관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는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의 햇볕정책이 북한을 얼마나 변화시켰으며 남북의 화해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서 정부가 분열을 조장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남북정책을 정리하고 처신해야 한다.
시위장에만 민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집단의 시위에도, 진보집단의 시위에도 민심의 일부가 있을 뿐이다. 성조기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인공기를 불태우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분열은 어리석다. 우리는 분열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분열의 뼈아픈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
상대의 미숙에서 오는 위험을 줄이려면 우리가 한층 더 성장해야 한다. 더 이상 인공기를 불태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장군 멍군식' 대결을 끝내자는 주장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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