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의 절반정도가 사실상 외국인 지배 체제이고, 정부보유 은행 지분 매각과정에서도 '외자(外資) 독식'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 단기수익을 지상목표로 하는 외국인에게 협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금융당국 관계자)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소유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진금융기법 전수, 경영 투명성 확보 등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국가경제의 '심장'격인 은행을 줄줄이 외국인에게 내주는 것은 경제 정책의 포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한 뒤 사외이사 5명을 파견하는 등 본격적인 경영권 행사에 나섰고, 1대 주주가 외국인(칼라일)인 한미은행은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지분 50%이상 인수를 추진 중이다. 제일은행은 외환위기 후 뉴브리지캐피털에 넘어갔고,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은 대주주인 골드만삭스(5.13%)와 ING(3.87%)를 포함해 외국인 지분이 70%에 이른다.
여기에 하나은행은 자사주 19% 중 15%를 매각하기 위해 일본 신세이은행 등 외국계 3∼4곳과 협상을 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모기업인 우리금융지주회사 역시 정부지분 처분을 위해 연내에 15% 이상 지분을 해외투자자에게 매각할 예정이다. 연내에 매각이 추진될 국민은행 정부 지분(9.33%)에도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외국인 주주의 절대 목표는 수익의 극대화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 자기 이익에 반할 경우 언제든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경제위기 관리자'로서 은행이 갖는 공익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론스타와 같은 단순 투자펀드의 경우 목표 이익을 달성하면 곧 빠져나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3∼4년 후엔 다시 경영권이 바뀌는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외국인 소유 은행들이 국제 기준에 비춰 볼 때 대부분 투자 부적격인 국내 기업들에 여신을 꺼리고 소매금융에만 치중하는 것도 문제다. 이 같은 기업금융의 축소는 장기적으로 투자 왜곡과 구조조정 지연 등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의 경우 캐나다와 말레이시아는 외국인 지분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고, 개방경제를 표방한 싱가포르도 1999년 5월까지 외국인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40%로 묶어 둔 덕분에 4대 은행의 국적을 지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자본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에 따라 은행 인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외국인 손에 국내 알짜 은행들이 송두리째 넘어간다면 국가적인 금융정책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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