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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하늘나라 우체국"에 띄워진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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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하늘나라 우체국"에 띄워진 사연들

입력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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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을 읽으면 그냥 눈물이 난다. 비록 사연들이 대개는 짤막하고, 표현은 혹 서툴지라도. 세상을 뜬 부모님, 홀연히 먼저 떠난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슴에 묻은 자식들에게 보내는 애끓는 그리움들이 자귀마다 행간마다 너무도 절절하다. 차마 한 호흡으로 읽어내기가 힘들고, 다음 사연으로 선뜻 넘어가기도 어렵다. 우리 모두가 같은 일을 겪었거나, 언젠가는 겪을 것이므로. 글들에는 유난히 '… …' 부호가 많다. 쓰다가 자주 감정에 겨워진 때문일 것이다.'하늘나라 우체국'에 띄워진 편지들이다. 우체국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산하 장묘사업소가 납골묘를 조성하면서 만든 '사이버 추모의 집' 한 켠에 자리잡은 방이다. 3년 전 2월 문을 연 이래 모여진 편지가 4만3,000여 편을 넘겼다. 이 사연들을 묶은 책이 지난해 초까지 벌써 3권이 나와 숱한 이들을 울렸다. 오늘 소개하는 사연들은 최근에 올려진 편지에서 고른 것들이다. (아니 고를 것도 없었다. 모든 사연들이 똑 같은 슬픔의 무게를 담고 있으므로)

어느새 9월, 황망했던 계절이 지나고 한가위가 코 앞에 다가들었다. 이제 곧 모든 길들은 이승을 떠난 가족을 찾는 성묘객들로 붐빌 것이다. 성묘는 어쩌면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상기함으로써 새삼 살아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행사일지니. 이 편지들을 읽으며 세상사를 핑계로 잊고 있던 가족의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딸이 어머니에게

# 엄마, 나 진짜 오랜만에 편지 쓰지? 미안해. 요즘에 일 새로 시작해서 정신이 없었어. 엄만 잘 지내? 아빠가 요즘에 나 몰래 많이 울어. 그런데 나 아빠 앞에서 눈물 안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는 데 그게 쉽지가 않아. 엄마, 나 남자친구 생겼어요. 엄마 있으면 보여주고 싶은데…. 그래도 하늘에서 다 보고있지? 엄마의 예쁜 딸 잘 지내고 있는 거 보이지? 미안해…. 엄만 분명 하늘에서 울면서 날 보고 있을 텐데. 난 밥도 잘 먹고 잘자고….

# 벌써 3년 됐다. 엄마랑 헤어진지도. 그런데 있잖아, 엄마, 나 엄마가 꼭 멀리 여행간 것 같아.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질 않아. 어제 옷 사러 갔다가 여성복 봤는데 엄마가 생각나더라. 사주고 싶더라. 내가 옷 사서 엄마한테 조만간 갈 꺼야, 기다려, 알았지? 거기 안 간지도 되게 오래됐다. … 엄마, 웃으면서 받아줄 수 있지? …

보고 싶다. 정말로 많이 보고 싶다. … 나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 하늘에서는 울지 말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꼭 만나. 사랑해, 엄마.

# '파페포포 메모리즈'라는 책을 보면 비가 내리는 건 엄마가 나를 안아줄 수 없어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더라. 엄마 울고 있는 거야? 아직도 잠이 들기 전에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와. 아직도 내 옆에 있는 거라고 믿고 싶어.

엄마, 나 요즘 많이 외롭고 힘들어. 아프기도 해. 일하는 것도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고…. 나 바보 같지?… 나 엄마한테 투정부리고 싶어. 내가 부리는 투정 다 받아주는 건 역시 우리 엄마 뿐이었는데.

엄마한테 잘 살고 있는 모습 보여줘야 되는데, 잘 안되네. 왜 이렇게 사는 게 점점 무서워지는 지 모르겠어, 엄마,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아들이 어머니에게

# 보고 싶은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늘 서서 담배를 피우시던 그 곳을 지난 주 토요일 조기청소 시간에 깨끗이 쓸었답니다. 마치 그 곳에서 어머님이 보고 계신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어머님의 자리를 깨끗이 닦았습니다.

떠나신 지 반년의 세월이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전 하루라도 어머님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실 적에 자식의 구실을 하였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어 하진 않았겠지만 도리를 다하지 못한 그 잘못 때문에 오늘도 어머니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선 저의 모습을 제대로 보실 수 있겠죠. … 안 계신 지금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저 세상에서는 외로움도, 가난도, 힘든 것도 없이 좋은 친구들과, 좋은 형제들과 행복하게 사세요. 전 어머니 자식임을 죽어서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잊지않고 살겠습니다. 자주자주 찾아 뵐게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꿈에라도 꼭 모습을 보여 주세요.

딸이 아버지에게

# 어제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네요. … 아버지 없는 명절 보낸지도 5년이 지났는데 올해는 더욱 허전합니다.

저도 한 가정을 꾸리고 나니 이제야 엄마랑 아버지의 감사함을 느낍니다. 항상 철없고 속만 썩이고 왜 그랬는지…. 아버지, 지금에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한때는 거리에서 만나면 창피하다는 이유로 그냥 몰래 숨어버리고 했습니다. 지금 딱 하루만, 아니 몇 시간 만이라도 아버지와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아버지와 하고 싶었던 거 다할 수 있을텐데….

이승에서는 죄인들을 명절 때 몇 백명씩 출감시켜 주는데 저 세상에서는 정말 착하게 사시다 돌아가신 분만 다시 환생 시켜주는 그런 거 없는지….

아버지 너무 보고싶고 사랑합니다. 당신께 배웠던 사랑과 자비, 이제 당신처럼 베풀고 살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 아빠, 정말 오랜만이다. 결혼 준비한다고 아빠한테 못 들렀지. 아빠 생각하니깐 또 눈물부터 난다. 아빠 나 이제 한달 있음 결혼한다. 주변에선 결혼식이 가까워지니까 많이 예뻐졌다고 하던데, 정말 나 많이 예뻐졌어?

아빠 없으니까 무게 중심이 없어진 거 같아서 힘들어. 혼수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그래. 아빠 있었으면 이것저것 사달라고 졸랐을 텐데. 아빠, 나 혼수로 뭐 갖고 싶은 지 얘기해 줄까. 예쁜 장이랑 침대랑 화장대랑…그리고 또 큰 텔레비전…

하지만 아빠 내가 정말로 바라는 건 … 단지 식장에 들어갈 때 내 손 꼭 잡고 갈 수 있는 아빠의 손이야. 나 정말 아빠 손잡고 들어가고 싶어. 아빠 손잡고 발걸음 하나하나 맞추고 싶다. 아빠가 갑자기 살아와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 손 꼭 잡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 아빠, 내 꿈에라도 나타나셔서 내 손 꼭 잡아 주세요. 꼭… 꼬옥!

아내가 남편에게

# 오랜만이지.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너무 힘들어. 이제 좀 있으면 당신 보내고 두 번째 맞는 추석이 돌아와. 정말 싫어. 명절이 돌아오면 며칠 전부터 눈물만 흘러. 몸도 함께 아프고….

당신 그 곳에서 요즘 우리 셋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 나 정말 자신 없다. 이제 겨우 18개월 지났건만 당신 너무 보고싶어… 미치도록. 아직도 차문 소리만 들려도 당신인가? 비슷한 옷만 보아도 깜짝 놀라고…. 언제쯤이면 초연해 질까.

당신 딸은 가족신문에 '우리 아빠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신다'고 아직도 아빠가 있는 것처럼 해. 그걸 쓰면서 애 마음은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당신이 있었으면, 당신이 있었으면 하고 수없이… …. 그러나 가슴만 시리네.

추석에는 못 가고 미리 갈게. 이번에는 술도 한잔 줄게. …

남편이 아내에게

# 당신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점점 더 그리워집니다. 당신을 멀리서라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같이 살 수는 없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 살 수만 있다면 … 당신도 같은 생각이지? 내가 더 보고 싶을까, 아니면 아들녀석이 더 보고 싶을까 궁금하네요.…

어제 회식을 했어요. 당신을 떠나 보내고 한동안 술을 안마셨거든. 당신 그 이유를 알아? 술 마시면 당신이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리워져서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어서였거든.… 한잔… 두잔… 세잔… 술을 마실수록 당신이 그리워서 눈물이 흐르더라구. 사람들이 내 모습을 봤을까? 남에게 안 보이려 노력 많이 했는데….

당신 행복한 줄 알아, 나 같은 사람한테 시집온 거. 당신 나랑 결혼한 거 후회 안 하지? 나도 후회하지 않아. 단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아쉬울 뿐이야. 다음 생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을 만나고 싶어. 당신이 설사 다시 병 들어서 일찍 죽을 사람이라 해도 다시 만나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 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아들에게

# 승민아, 엄마 왔어. … 엄만 정말 네가 많이 보고 싶어. 엄마한테 한번만 안 올래?

수영장에도 가고, 인형극도 보러가고, 비오는 날 비옷 장화 신고 첨벙거리며 다녀도 보고, 아이스크림도 원 없이 먹어보고, 아빠랑 우리 세 식구 낚시 하러도 가고, 좋아하는 서울랜드에도 가고…. 꿈 속에서라도 우리 승민이와 해보고 싶은 것들이야. 이런 것들 엄마랑 올 여름에 해보기로 약속했잖아.

우리 승민이 그 동안이라도 많이 컸겠지? 키도 많이 크고 살도 불어 통통해지고 더 씩씩해지고 더 많이 튼튼해졌을꺼야. 우리 착한 승민이 늠름해진 모습 보여주러 한번 와 줄꺼지? 할머니도 승민이 많이 보고 싶으신가 봐. 엄만 아무리 보고 싶어도 승민이 재롱잔치 때 비디오 절대 안 보려고 노력하는 데 어제 할머니가 그것 좀 달라고 그랬어. …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래. 사랑한다. 보고 싶어, 아들 승민아….

아빠가 아들에게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지난 금요일에는 낚시를 하러 갔었다. 사흘간 머물면서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다. 네가 초등학교 시절 내가 낚시를 떠날 때면 언제나 따라 나서곤 했었지.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도 없는 곳에서 힘들게 고생을 하면서도 따라 나서는 네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도 시원한 음료수도 충분하게 사주지 못했던 무능하고 못나기만 했던 아빠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니. 지금 너를 만나면 이 몸을 팔아서라도 부족함을 모두 채워주고 싶은데….

낚시터에서 수없이 불러 보았던 너의 이름. 주위의 사람들 때문에 목청껏 소리 내어 불러보진 못했어도 지금도 그 곳에 가면 메아리 되어 남아있겠지. 나의 아들아. 널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아아, 떠나고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여.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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