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쌍안경 같은 별 필요도 없는 것은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꼭 필요한 것은 빠트린다. 이를테면 손톱깎이가 그렇다. 처음엔 손톱깎이가 없다는 것도 모른다. 일주일쯤 지나면 자라나는 손톱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다. '손톱이 좀 있으니 여러 가지로 편리하군. 귀 후빌 때도 편하고... 머리카락도 잘 집히는 걸.'이주일쯤 지나면 손톱깎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여행 중에는 유난히 손톱 사이에 때가 많이 끼기 때문에 뭘 먹을 때마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진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톱깎이 좀 빌려 달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얼마나 칠칠치 못해 보일까. 걱정도 된다. 그리고 자기 손톱이 길고 더럽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더더욱 말을 못 꺼낸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경치는 눈에 안 들어오고 가게만 보인다. 가게에 들어가선 손톱깎이만 찾는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손톱을 깎기나 하는 건지, 아무리 찾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 다니면서 손톱깎이라는 외국어 단어는 배워본 적도 없어 물어볼 수도 없다. 결국 가위를 사서 잘라내는 사람도 보았다. 손톱깎이,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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