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지음 현대문학 발행·8,500원'성실하고 부지른하여서 십전의서 천원/붓터 무섭게 악기면서 사라야지 부자가되지…말할새업서 글로 붓탁한다 잘 좀 어머니말 잘 드러라' 젊은 시절 어머니는 심장병을 다스리느라고 소다 가루 아홉 말을 먹었다. 그런데도 지금도 울화가 치밀면 '울음이 연기처럼 나는 병'을 앓는다. 시인인 아들을 찾아와 머물면서 써놓은 어머니의 편지는 순결한 시다.
시인 박형준(37·사진)씨는 집 안쪽에서 세상을 본다. 집의 생각이 마룻바닥의 힘줄로 튀어나와 있다. 시인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산문집 '저녁의 무늬' 중 '내 자신이 빈방이라는 생각'에서다. 집 안은 세상의 밖이다. 이 세상의 밖에서 문구멍으로 세상을 훔쳐보기. 박형준씨에게는 그것이 시 쓰기다.
박씨의 산문에는 희디흰 목련 꽃송이가 있고, 붉은 코스모스가 핀 비포장 도로가 있고, 저녁의 공원 풍경이 있다. 모든 서정의 무늬를 글로 새기면서 시인은 무엇 때문에 시를 쓰는지를 더듬어간다. 그때 나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상상하며 시를 쓴다, 세상에 아름다움을 하나 더하기 위해 시를 쓴다. 세수하는 자식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는 너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구나"라는 선한 목소리에 뿌리내린 비애의 기억을 재현하려고 시를 쓴다…. 어떤 시에서 외로운 시인을 품어주는 집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어서 들어오라고 교태를 부리는 관능적인 집. 사람들은 문학이 사람들이 다 나가버린 집 같다고 한다. 박씨는 문학이 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누군가 떠났다고 해서 푸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인은 집 안에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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