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재 지음 꿈꾸는 돌·9,500원"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팔을 가진 관음보살의 화신이라 믿는데, 왜 그는 중국의 손아귀에서 티베트를 구하지 않는 걸까?" 다람살라의 티베트 어린이 마을(인도의 티베트 정착촌)에서 저자는 한 소년에게 물었다.
"달라이 라마 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티베트인과 중국인은 똑같이 소중한 존재예요. 만약 달라이 라마께서 신비한 능력을 보여 중국인들에게 해를 끼치고 티베트의 독립을 얻는다면 어떻게 그가 살아 있는 부처님일 수 있겠어요?"
40년 넘게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염원해온 티베트 사람의 말치고는 너무 뜻밖이다. 티베트 식으로 살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고향을 탈출해 낯선 땅 인도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어린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북서부 해발 1,800m의 산중 도시 다람살라를 비롯해 라다크, 데라둔, 타시종, 훈수르 등 인도 대륙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티베트 정착촌에서 만난 사람들과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을 차분하게 적어내려간 기행 에세이집이다. 달라이 라마나 티베트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관련 책들이 꽤 나왔지만 티베트 아이들과 정착촌 사람 이야기를 자세하게 묘사한 이런 책은 드물다.
티베트 어린이 마을은 어느 곳이든 30∼35명 단위로 아이들을 수용한 '홈(Home)'이 있다. 정규 교육과 대단위 양육이 함께 이뤄지고 있는 이곳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지만 아이들은 늘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거기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증오나 나라 잃은 자의 설움을 가슴에 담기보다 일상에 대한 만족과 행복,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유대감, 다음 생까지 이어질 행동에 대한 책임감 등을 배운다.
그렇다고 티베트 아이들이 하나 같이 초인(超人)인 것은 아니다. "사는 게 힘들거나 버겁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소년 믹마 체링은 이렇게 대답했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면 괜찮아져요." 가진 것은 적지만 마음만은 늘 풍족하고, 거친 음식과 좁은 잠자리가 고달파도 순박하게 웃울 줄 아는 것은 일상처럼 되어 있는 기도와 교육의 힘이다.
그러나 책이 온통 티베트 사람에 대한 찬사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7년 넘게 약으로 삶의 허전함을 달래는 다와, 가족을 돌보지도 못하지만 품위를 갖춘 풍각쟁이 소남 등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타국에서 밑바닥을 헤쳐나가야 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티베트 어린이 마을 운동장에 걸린 '나보다 당신이 먼저(Others before self)'라는 표어처럼 남을 배려하는 삶에서 행복을 가꿀 줄 아는 티베트 사람의 정신이다. '고통으로 기쁨의 크기를 잰다'는 그들의 격언처럼 타인과 공감하는 속에서 고통을 만족으로 바꾸어 가는 티베트인의 생활 태도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