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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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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입력
200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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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휘틀럼 지음·김문호 옮김 이산 발행·1만 8,000원"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발명되었다"고 말하는 도발적인 책이 나왔다. 성서가 전하고, 성서 고고학이 뒷받침해온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시온주의자나 기독교도들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는 다윗왕과 솔로몬의 영광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하는 책이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뒤흔드는 뇌관이 그 안에 숨어있다.

그럼 그 빈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 있다는 말인가. 바로 팔레스타인의 역사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팔레스타인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서양 문명의 뿌리를 성서에서 찾으려는 오랜 집착의 결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침묵당했다는 것이 저자 키스 휘틀럼의 주장이다. 1945년 건국한 오늘의 이스라엘은 국가적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해 고대에서 뿌리를 찾는 데 매달려 왔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든 것이 마사다 요새 발굴 작업이다. 기원후 1세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군에 맞서 사해 연안의 마사다 요새에서 싸우다 집단 자살했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의 상징이다.

고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문가인 저자는 고대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어떻게 말살되어 왔는지, 역사적 실체가 없던 고대 이스라엘이 어떤 정치적·사회적 목적에 의해 어떻게 발명되었는지 치밀하게 밝힌다. 따라서 이 책은 거꾸로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밝히는 '해체의 역사' 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유감스러워하는 바이지만, 고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유물이나 유적, 연구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이 책이 고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관한 기존 연구의 오류와 오만, 편견을 꼬치꼬치 물고 늘어지면서도 정작 고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소개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저자는 고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복권하려면 성서에 갇힌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팔레스타인 출신의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비서구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대위법적 독해'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성서의 제약을 뛰어넘더라도 서양중심주의가 남아있는 한 진정한 팔레스타인 역사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주문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표준적인 역사학의 방식과는 철저히 다른 접근방식이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의 시각에서 쓰인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등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머나먼 팔레스타인의 고대사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도 고대사에서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정당성을 찾아내려는 열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생각할 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마땅히 귀기울일 만한 것이라 하겠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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