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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로즈의 편지

입력
200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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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로즈 지음·이재룡 옮김 마음산책 발행·6,500원"죽음은 기쁨을 준다"고 했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대문호의 말이었지만 파스칼 로즈(46)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1996년 첫 소설 '제로 전투기'로 프랑스 최고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지만 바로 그 해에 동맥류를 앓았다.

죽진 않았다. 뇌수술을 했고 머리에 플라스틱 조각을 덧대야 했다. 고통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기보다 삶의 희열이 갖는 거대한 부피를 깨달았다. 소시지 국수를 먹을 때의 달콤한 관능, 머리를 감겨주는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 살아있는 사람이 느끼는 진정한 기쁨에 대한 확신. 로즈는 "삶을 계속하는 것이 백번 천번 옳다는 것을 톨스토이가 인정하도록 하고 싶어서" 이 편지를 썼다.

'로즈의 편지'는 파스칼 로즈의 투병기다. 톨스토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이 글로 로즈는 2000년 모리스 주느부아상(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던 모리스 주느부아를 기념하는 상)을 수상했다. "갑자기 오른쪽 머리에서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동자가 돌덩이처럼 굳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제로 전투기'에 썼던 문장입니다." '운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이미 쓰여진 것'이란 말이 있지만 파스칼 로즈의 글쓰기, 그의 운명이 그러했다.

"내 몸을 가져가세요. 주사를 놓으시죠. 검사를 하세요. 자,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뇌를 열어보시죠. 고맙습니다." 작가인 그도 고통을 제대로 말로 옮기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로즈는 다만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침략당하고 짓눌리고 점령당했다는 느낌만을 떠올린다. 병상에서 그는 짜증을 내고 비명을 지른다. 문장에는 신경질이 섞여 있고 때로는 불안한 조증(躁症)이 틈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기도한다. "도와주세요. 내 눈을 밝혀주세요. 난 아직 죽지 않았잖아요."

병원에서 나온 뒤 로즈는 진실을 위한 투쟁의 의무를 깨닫는다. 생명을 건 전투에서 얻은 것은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진실, 오로지 진실,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 '쓴다'는 행위의 유일한 정당성은 체험이며, 작가의 임무는 그것을 벌거벗은 언어로 기록하는 것임을 로즈는 그 자신의 체험으로 '썼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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