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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여고근무 첫해의 봄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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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여고근무 첫해의 봄소풍

입력
200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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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소풍 때 내가 근무중인 고등학교의 학생기자들을 인솔해서 강원 평창군 효석문화마을에 다녀왔다. 학교신문 특집면으로 준비중인 '소설가 이효석의 생애'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 였다. 소설가 이효석을 생각하면서 유익한 하루를 보냈다.요즘 소풍은 이처럼 문화재나 박물관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틀에 박혀있다. 오전 10시 동물원 집결, 12시까지 경내 관람 및 자유시간, 12시 점심 식사 후 해산…. 요즘 학교 소풍에서 신나는 추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요즘과는 완전히 다른 '격세지감'의 소풍이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만큼 학생들을 들뜨게 만든 행사는 드물었다. 특히 시골 학교의 경우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15년 전 내가 구례여고로 발령을 받아 갔을 때였다. 교사 경력 4년째인 나는 여고 근무가 처음이었다. 서른 세 살의 유부남인데도 국어 선생인 나의 인기는 시쳇말로 하늘을 찔렀다.

지리산 화엄사를 목적지로 잡았던 봄 소풍 때였다. 나는 2학년 수업만 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3학년 여학생들이 나를 모셔(?) 가려고 했다. 3학년 여학생들은 "선생님, 저희들과 놀아요"하면서 나의 팔을 잡아 끌었다. 우리 반 여학생들은 "그럴 수 없다"면서 나의 다른 쪽 팔을 잡아 당겼다. 그러다가 내가 그날 처음 입었던 새 점퍼의 겨드랑이 부분이 찌이익 소리를 내면서 찢어졌다. 우리 반 아이들은 깜짝 놀라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결국 3학년 여학생들에게 끌려갔고 지금은 추억이 된 디스코 춤을 추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코미디언도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디스코 파티가 끝나자 모델이 되어야 했다. 아이들이 나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나섰기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예쁘장하게 생긴 학생이 잽싸게 나를 껴안으면서 V자를 지어보이는 게 아닌가! 그때 맞은 편에서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나중에 이 사진을 본 아내가 나를 의심하는 통에 사정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때 그 여학생은 이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 30대 중반이 돼 있을 그 여학생은 아내와 벌어진 일을 몰랐을 것이다. 벌써 15년 저쪽 세월의 일이다.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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