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이종 격투기 왜 인기인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이종 격투기 왜 인기인가

입력
2003.08.29 00:00
0 0

갑자기 불어닥친 이종격투기 열풍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인간의 폭력성을 부각시켜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반면 “오히려 그런 폭력성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라는 분석도 많다. 하지만 격투기 열풍이 현대인과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의미심장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는 큰 이의가 없다.포스트모던 스포츠?

어린 시절 누구나 품었을 궁금증 하나. ‘로보트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조오련과 물개가 수영을 하면 누가 빠를까.’

이종 격투기의 신선함은 이런 원초적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오직 하나의 룰 아래 복싱, 태권도, 유도, 레슬링, 무에타이, 합기도, 택견 등 다양한 격투기 고수들의 한판 승부가 가능해진 것. 스포츠에서도 포스트모던한 혼성잡종이 이뤄진 셈이다.

각 영역을 세분화해서 규칙을 고도로 발전시켜온 것이 근대성의 한 특징이라면, 포스터모던은 이 벽을 넘어서려는 이종교배의 문화. 근대의 세분화된 장르가 점차 고루한 관습의 벽이 되어버린 탓이다.

실제로 제1회 스피릿 엠씨 대회의 홍보 타킷 역시 이 부분이었다. 심판의 미숙한 판정 등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무에타이 전사 이면주가 레슬러, 복싱 선수 등의 벽을 뚫고 우승하며 이런 궁금증의 일말을 풀었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한두 번의 이벤트에는 알맞지만 이종격투기의 진정한 동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맞짱 뜨기, 링위의 현실로.

조폭 영화 신드롬 이전인 90년대 초부터 청소년 문화의 한 지류로 꾸준히 흘러온 것이 ‘맞짱뜨기’였다. 70~80년대 무협지의 정서가 ‘고독한 영웅의 황홀한 활약상’이었다면 그 변종인 ‘니나 잘해’, ‘짱’ 등 90년대판 학원 무협만화의 정서는 ‘짱들의 승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숱한 격투 게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더 강한지를 결판내 지는 자는 깨끗이 승복하는 것.’

맞짱뜨는데, ‘손기술만’, ‘발기술만’ 등의 제한을 두면 구차스럽다. 청소년들이 이종격투기에 환호하는 것도 바로 그들이 만화와 영화, 게임에서 봐왔던 ‘한판 맞짱뜨기’가 링 위에서 현실로 구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맞짱뜨기 문화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동식씨는 “고도로 합리화된 사회에서는 선택의 문제만 남으며 승부의 경험은 배제된다”며 “승리했을 때의 기쁨과 패배했을 때의 허무감, 그리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 이런 승부의 원초적 건강성을 경험하고 싶은 충동”이라고 해석했다. 예컨대 선거에서 지면 언제나 ‘~탓’으로 합리화하는 현대사회의 위선에 대한 염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폭력의 탈신화화, 리얼의 세계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법. 이런 맞짱, 고수들끼리의 맞대결은 상상처럼 멋진 것이 아니다. 차라리 처절한 몸싸움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영화 ‘품행제로’에서 만화 같은 영웅담을 과시하던 중필과 상만의 맞짱뜨기가 실제로 초라한 동네 양아치 싸움처럼 끝나듯. 제1회 스피릿 엠씨대회는 한편으로 ‘투견들의 싸움판’으로도 비쳐졌다.

이런 리얼한 싸움, 환상적인 날아차기가 아닌 ‘무식하게 치고 차고 자빠뜨리는’ 싸움이 오히려 이종격투기의 매력이란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프라이드 등 일본 이종격투기 대회의 한 뿌리가 프로레슬링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쇼가 아니라 진짜 격투다.’

폭력조차 복제되었기 때문일까. 환상과 신비를 제거하고 적나라한 현실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의 갈구. 달리 말하면, 이는 고도 합리화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이 영화 ‘매트릭스’처럼 가상의 복제된 삶에 갇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 모른다.

폭력성의 승화인가, 폭력의 일상성인가

이런 저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종격투기에 ‘폭력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결국엔 ‘링 위의 피’이며 녹다운되는 모습이다. 한 격투기 팬은 “스피릿 엠씨 대회 결승전이 끝난 링바닥이 피로 범벅이돼 조금 끔찍했다"고 말했다.

이종격투기 옹호론자들은 이에 대해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 폭력성을 링 위에서 승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음향회사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넥타이를 맨 나를 링 위의 선수와 동일시하면서, 잃어버린 야성을 찾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종 격투기 마니아에 의외로 고학력 지식인층이 많다는 것도 이런 ‘잃어버린 원시성’에 대한 갈구로 읽히게 한다. ‘링 밖의 폭력은 천박하지만, 링 위?승부는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여전히 만만찮다. 사회적 폭력이 만연하고 우리의 내면 또한 폭력에 길들어진 상황에서, 이종격투기는 폭력적 사회를 폭력으로 해소하고, 이를 일상화하는 또 하나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폭력을 쾌락화함으로써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심리를 파고든, 스포츠 마케팅이 만든 정교한 상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