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여자의 색도 바뀐다. 여름 내내 핸드백 속 필수품이었던 선명한 주황색 립스틱은 이제 브라운이나 레드 립스틱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가을의 낭만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연한 하늘색이나 노랑색으로 경쾌하게 반짝였던 눈매는 퍼플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깊고 그윽하게 가라앉는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을은 여자를 성숙하게 만든다.
눈- 퍼플색 안개에 젖다
올 가을 메이크업의 최대 이슈는 입술이 아니고 눈매다. 화사하고 맑은 피부 표현에 중점을 두는 누드 메이크업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입술 화장은 가볍게 하는 대신 눈매에 확실한 포인트를 주는 것이 트렌드.
눈을 강조하는 화장은 빨강 분홍 갈색 등 립스틱 색상 위주의 3파전으로 일관해온 색조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립스틱에는 쓰이지않는 청색과 회색, 녹색 등 다양한 색상활용이 가능해서 색조전쟁도 훨씬 다이나믹해졌다. 지난 여름의 연한 파랑색에 이어 올 가을 주도권을 넘겨받은 색상은 단연 퍼플이다.
퍼플(purple)은 우리 말로는 보라와 자주의 중간쯤 되는 색상이다. 보라의 색상 이미지가 은밀하고 신비로운 것이라면 자주는 전통적으로 왕이나 귀족의 신분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자연히 퍼플의 이미지도 고급스러우면서 차갑고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풍긴다
올 가을 유행색인 퍼플은 순수한 원색 그대로도 쓰이지만 대부분은 회색이나 갈색을 가미해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 화장품 업체들마다 내놓는 색상 명칭도 퍼플브라운, 파티 바이올렛, 퍼플그레이, 브라우니시 퍼플 등으로 변화무쌍하다.
화장법은 스모키 아이메이크업이 트렌드로 제시되고있다. 이미 지난 봄 열린 파리나 밀라노 패션컬렉션에서 다채롭게 선보인 스모키 아이메이크업은 마치 마스카라나 아이라이너가 번진듯 아이섀도를 짙게 펴발라 눈을 강조하는 것. 영화속 팜므파탈(매혹적 악녀)들이 애용하는 스타일로 눈매를 고혹적으로 연출해주는 것이 매력이다.
퍼플 외에도 실버 라벤더, 파티 바이올렛, 블루 마티니, 실버 스톤 등의 다채로운 색상들이 올 가을 여성들의 눈매를 공략한다.
입술- 브라운 펄로 반짝이다
퍼플 색조의 강세와 함께 올 가을 급부상할 메이크업 트렌드는 펄 사용의 극대화다. '이보다 더 반짝일 수는 없다'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화장품 브랜드들마다 엄청난 양의 펄을 가미한 제품들을 쏟아내고있다. 특히 립스틱은 반짝이는 펄들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 펄이 함유된 립스틱은 입술에 볼륨을 더할 뿐 아니라 금방이라도 입술이 활짝 열리면서 낭랑한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더해준다.
태평양 이미지메이킹팀 한창봉 과장은 "예전에도 펄이 많이 사용됐지만 촉감이 다소 거칠거렸다면 최근 나오는 펄은 은 코팅을 해서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조명이 약한 곳에서도 반짝이 효과를 100% 발휘해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펄이 애용되면서 립스틱 색상은 선명한 레드나 분홍 오렌지보다 갈색쪽으로 기울었다. 브라운에 펄을 많이 넣어 글래머러스한 느낌을 강조하는 추세. 특히 옅은 톤의 브라운 립스틱은 스모키 아이메이크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도 인기다.
유행 스타일- 모던클래식 Vs 사이키델릭
올해 화장품업체들이 제안하는 스타일은 크게 모던 클래식과 사이키델릭으로 나뉜다. 코리아나 엔시아 메이크업아티스트 오경희씨는 "여성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이중성, 즉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성과 차갑지만 도발적인 여성성을 2003년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 가을 메이크업의 양대 트렌드"라고 말한다.
사랑스러운 모던클래식은 50년대와 60년대 레이디라이크 패션에서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중시한다. 같은 퍼플색 아이섀도라도 붉은기나 갈색톤이 더 강한 것을 좀 더 연하게 바르고 아이라이너로 깔끔하게 마감하며 입술도 레드계열을 선호한다.
반면 사이키델릭은 80년대 디스코 패션의 영향을 받았다. 입술은 물론 아이섀도나 피부 메이크업베이스에 이르기까지 펄이 많이 들어간 제품을 사용하고 색상도 할로겐 브라운이나 오렌지 쿠퍼 같은 펑키한 이미지의 색상이 많다.
사랑스러운 숙녀가 될 것인가, 도발적인 팜므파탈이 될 것인가. 태평양 한창봉 과장은 "예전엔 대형 화장품업체에서 올해의 트렌드는 빨강색 립스틱이라고 선언하면 너도나도 다 빨강색을 바르고 다녔다. 하지만 소비자도 진화한다. 이제는 아무리 유행색이라 해도 자신에게 맞지않는 스타일이면 쓰지않는 만큼 클래식 대 사이키의 한판승부는 전적으로 소비자들의 손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헤어 색깔
빨강머리가 되돌아 온다고?!
메이크업 만큼이나 시즌별 색조 변화가 과감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헤어컬러링 분야.
머리카락에 색을 들이는 컬러링이 일반화하면서 한동안 카키브라운이나 노랑 등 아주 밝은 색위주의 염색이 많았지만 올 가을엔 8∼9년전 인기를 얻었던 검붉은 빨강색이 다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샘물헤어의 오세일 부원장은 "이번 가을에는 흑자주나 흑보라, 흑밤색 등으로 진해지면서 무거운 빨강색 계열이 급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진한 적색은 올 가을 인기스타일로 점쳐지는 층 없이 깔끔하게 친 단발머리나 뱅스타일 머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조. 오 부원장은 "메이크업과 마찬가지로 헤어도 패션 트렌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올 가을 60년대 비틀즈 스타일의 패션이나 헤어가 새롭게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되면서 머리도 숱이 많아보이도록 층없이 친 직모에 좀 둔탁한 느낌의 흑적색 염색을 가미한 스타일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프랜차이즈 헤어살롱 쟈끄데상쥬에서도 최근 발표한 가을 헤어트렌드에서 차분한 스트레이트와 여성스러운 얼굴형을 강조한 복고적 헤어컷의 부상을 점치면서 염색색상으로 붉은기가 도는 짙은 구리빛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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