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일인 8월 29일을 맞아 나라의 위기와 공직자들의 처신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1910년 8월 중순, 일본과의 합병조약에 대해 중추원 의장이던 운양 김윤식(雲養 金允植·1835∼1922)은 '不可不可(불가불가)'라고 썼다. 이 네 글자는 절대 안된다는 충신의 고집일 수도 있고, "불가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역적의 억지일 수도 있다. 대세상 어쩔 수 없다는 "不可不 可"의 체념으로도 볼 수 있다. 평소 행적에 문제가 없었다면 당연히 결사반대의 뜻으로 읽어 주었을 것이다.8월 19일의 어전회의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설도 있는데, 말보다 글이 더 모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 썼다는 설이 더 신빙성있게 들린다. 합병 직후 자작이 되고 은사금도 받은 그는 역사에 반민족·친일인사로 기록됐다. 또 죽어서까지 사회장 문제를 일으켜 민족을 분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알 수 없는 것은, 3·1운동 직후 독립승인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일본정부에 보냈다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작위를 박탈당한 일이다. 어떻게 이리도 앞뒤가 다른지 모르겠다.
상황은 다르다 해도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 국가의 중대 사안에 대한 공직자들의 처신이 중요하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국권 침탈기와 다른 것은 반대와 저항의 대상이 외세냐, 민주적이고 성숙한 시민사회 지향을 저해하는 내부의 문제냐일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왜 위기냐 하는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갈등의 총체화 무한대화이며 이로 인한 분열과 대립이다. 모든 부문에서 격렬하게 펼쳐지고 있는 갈등은 그 공격성과 배타성이 어느 때보다 더 심하다.
원래 갈등은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생명력이며 통합의 바탕이 되는 요소다. 이런 순기능을 역기능과 같은 차원에서 생각하다 보면 갈등 관리를 정부의 주요 업무로 파악하게 된다. 민주적이고 복합적인 다원사회일수록 정부의 기능은 갈등 조정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갈등 관리에 실패하고 있으며 거꾸로 이를 양산하고 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갈등과제로 24가지를 선정한 것도 충분하지 않은데, 7월에 국무총리실 산하 정책평가위원회가 지적했듯 제대로 해결돼 가는 것이 그나마 거의 없다. 정부가 표방하는 대화와 타협은 중요한 지표다. 그러나 구체적 현장의 적용과정에 일관성과 원칙이 없어 갈등과 투쟁을 부추기는 역작용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화와 타협의 미덕을 구현할 실천적 작동기제가 없는 것이 문제다. 모든 사안이 대통령 앞으로만 줄을 서 있고, 갈등의 형성과 가공, 배출과 처리에 이르는 각각의 단계에서 관리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대통령의 책임이다. 최종 발언자라야 할 노무현 대통령은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쉽게 말을 하고 있다. 또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가까운 사람=검증을 거친 사람'이라는 등식의 폐쇄적 인사로 일관해 '코드독재'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게 됐다.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던 다짐이 일방적인 강의공화국으로 변질돼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도 받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에 대해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도 지쳐 쓴 소리를 포기하는 분위기다. 불행한 일이다. 보좌진이나 장관들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한 발짝 더 나가 충성경쟁을 하거나 앞뒤가 다른 말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 평생 벼슬을 할 것도 아니라면 코드의 시류에 안주하지 말고 잘못 진행되는 일에는 '불가 불가'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물러나는 게 올바른 공직자의 처신이다.
임 철 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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