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떠내려 가다가 구조를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거대한 역전극이죠."영화 '바람난 가족'이 전국 11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27일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에 오르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받아 9월2일 출국하는 임상수(41) 감독의 감회는 그래서 더욱 남다르다. 그는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로 성공적 데뷔를 했지만 '눈물'(2001)은 참패했고, '바람난 가족'도 주연으로 내정한 김혜수가 캐스팅에서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번 그의 베니스행은 '눈물'로 베를린 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했을 때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섹스 3부작'을 통해 여성과 성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그를 세계 영화계와 국내 팬들이 알아 본 것일까. "투자자도 없어 은행 빚으로 찍은" 영화에 대한 호응은 뜨겁기 짝이 없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예술
"내 영화는 다른 감독의 영향을 받기보다 혼자 낑낑대고 찍은 것이다. 그래서 어설프고 신선하지 않은가? 베니스도 이상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 나를 불렀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흥행과 영화가 미친 사회적 파장, 세계적 영화제 초청 등에 한껏 고무됐을 법하지만 그는 웃음을 아끼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며 영화의 흥행요인에 대해 "나는 늘 어떻게 시장에서 살아남을까를 생각한다. 조금 진지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겪는 일상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관객이 그런 체험의 파도를 타면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예술인 것 같다. 영화제 진출도 해외판매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쁘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
'바람난 가족'은 오랜만에 영화계에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가족제도와 가부장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는 옹호론에서부터 주인공 호정 역(문소리)이 비현실적 캐릭터이며 감독 자신의 판타지라는 비판까지 다채로운 논의를 생산했다. 그는 "사실 부도덕한 영화이기도 하고 주류에 대해 공격이기도 한 영화여서 욕도 많이 먹지만 욕을 먹고 거기에 맞대응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런 논쟁이 없으면 심심하다. 영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라며 오히려 시비를 반겼다. 그는 "여성 관객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읽어내고 후련함을 느끼는 반면 남성 관객은 괴로워 하더라"고 덧붙였다. 남자친구보다 여자친구가 더 많고, 동창회 같은 데는 관심도 없다는 그의 삶과 여성의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그의 영화가 전혀 다를 수는 없을 터이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온 뒤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 등으로 일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여섯에 감독 데뷔를 했지만 그런 만큼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젓함을 얻게 된 것을 소득으로 꼽았다. "앞으로도 나만의 냄새가 나는, 사회성을 바탕에 깐 상업적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10·26 사태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을 다음 영화로 잡았다. 베니스 영화제가 끝난 뒤 캐나다에 머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7월에 귀국할 예정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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