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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이종 격투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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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이종 격투기 열풍

입력
200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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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직장인, 밤엔 파이터.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만화예술학과를 나와 허영만 화실에서 만화가로 활동하는 이호성(31)씨의 또 다른 직업은 ‘파이터’. 아마추어 격투기 동호회 ‘싸울아비’ 회원이다.화실에서 펜을 들었던 그는 밤이 되면 주먹을 든다. 서울 불광동의 한 체육관을 찾아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두시간여 동안 매트 위를 구른다. 엎어치고, 메치고, 목을 조르고, 팔을 꺾으면서. “원래 몸이 허약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몇해 전부터 이종격투기에 관심을 가졌어요. 강렬한 뭔가가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좀 더 강한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인천의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유연식(23)씨. 이종격투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도 직접 운동에 나섰다. 올 3월부터 ‘싸울아비’에 가입해 주말이면 서울 불광동의 체육관을 찾는다. “운동이 격해서 무척 힘이 들어요. 힘든데 왜 하냐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힘이 들기 때문에 하는 거에요. ”

격투기 애호가 동호회에서 올초 직접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분리돼 나온 ‘싸울아비’의 회원은 50여명. 대부분이 직장인이거나 대학생인 이들은 낮에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묻지도 않는다. 오직 파이터의 세계에서 만난 동료로 인정하고 사귈 뿐이다.

처절한 격투, 열광하는 관중.

올 4월 국내 최초의 이종격투기 대회로 닻을 올린 스피릿 엠씨(Spirit MC) 대회의 예선전 격인 등용문대회가 열린 16일 서울 장충체육관. “무릎!, 무릎!(으로 차)” “그렇지!!” “왼쪽으로 돌아서 잡아, 왼쪽!!” “암바!” 고래고래 울리는 고함소리가 때로는 거의 합창처럼 동시에 터져나온다. 세컨들보다 더 열띠게 훈수를 두는 사람들은 1,500여명의 관중들이었다.

아마추어인 이호성씨와 유연식씨도 출전했던 이날, 관중들의 함성에 8각의 링은 뜨거웠다. 때론 피가 솟구쳤고, 선수들은 힘이 빠질 때까지 주먹을 휘두르고 몸을 날렸다. 복싱, 씨름, 유도, 레슬링,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생존의 몸부림으로 서로 치고, 차고, 조르고, 꺾었다. 한 여성 관객은 우람한 체격의 노랑머리 선수가 상대를 쓰러뜨리고 펀치를 날리자 “너무 멋지다”며 환호성을 질렀고, 다른 관객은 자신이 직접 경기를 하는 듯 팔을 휘두르며 앉았다 섰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부인과 함께 구경 나온 직장인 이민우(31)씨는 “해외 격투기만 보다가 국내에서도 이종격투기 대회가 열린다고 해 호기심에서 찾아왔다”며 “최소한의 룰로 빠르고 강한 자를 가려내는 이종격투기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고 자신있게 말했다.

뜨거운 격투기 바람

이종(異種) 격투기 열풍이 심상찮다. 일부 마니아들의 비주류 문화로 흘러왔던 격투기 바람이 올 4월 열렸던 국내 첫 대회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열풍의 징후는 여러가지다. 올초만 해도 몇천명 수준이던 이종격투기 관련 카페 회원수가 수만명에 이르고 카페 수도 수백개를 헤아리며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스피릿 엠씨 대회의 성공 이후 이종격투기 대회도 잇따라 신설됐다. 지난 16, 17일 세계이종격투기연맹(WKF) 대회가 열렸고, 네오파이트(Neofight) 대회가 이달말, 스트라이킥(Strikick) 대회가 9월, 케이오킹에프씨(KO King FC) 대회가 11월 열릴 예정. 스피릿 엠씨도 10월에 제2회 대회 본선을 개최한다.

이런 열풍의 기폭제가 됐던 것은 케이블TV인 KBS스카이. 지난해 말부터 일본의 이종격투기 대회인 ‘K-1’와 ‘프라이드 FC’ 등을 독점 중계하면서 국내에 이종격투기 붐의 기반을 만들었고, 현재 이 케이블TV의 시청점유율은 30%대에 이른다. 위성방송 프로그램 중에선 시청률 1위. KBS스카이측은 국내 격투기 마니아를 5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이중에서 여성도 20~30% 차지하는 보고 있다.

다음카페 ‘쌈박질클럽’의 운영자인 대학생 한신구(22)씨는 “예전에 격투기 얘기를 하면 외계인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희귀한 격투비디오를 구해달라고 서로 안달이다”며 “해외 격투 스타의 티셔츠라도 구하면 주위에서 부러운 시선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 고등학생은 “요즘은 교실 뒤에서 애들끼리 뒤엉켜 레슬링하는 것이 유행이다”고 말했다.

격투기 마니아 50만명 달해

이런 열풍 속에서 ‘싸울아비’ 등 실제 아마추어 격투 동호회가 결성되는가 하면, 격투 도장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 이종격투기를 가르치는 팀태클의 최무배 코치는 “이종격투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느는데, 의외로 고학력 직장인도 많다”며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 탈출구를 격투기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성주 KBS스카이 해설위원은 “거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종격투기가 침체됐던 국내 격투시장의 최대 종목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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