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 때는 아이가 콧물만 나와도 병원을 찾았고, 주사를 안 맞으면 처방을 받지 않은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젠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된 탓인지 웬만한 일로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일단 캐나다에서는 의사를 만나려면 예약을 한 후 최소 일주일이 지나야 가능하다. 아마도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곳 출신 의사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미국으로 많이 간다고 한다. 더구나 이 곳은 의료비가 무료라 항상 예약환자들이 줄을 서있다. 처음에 아이의 담당의사를 찾으려고 10군데가 넘는 소아과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돌보고 있는 아이들이 정원을 초과해 더 이상 새로운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곳의 의사부족을 실감했다.
물론 급한 경우에는 종합병원 응급실이나 예약이 필요 없는 클리닉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클리닉의 경우 의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민 초기에는 아이 때문에 여러 번 클리닉을 찾아갔다. 만나기 힘든 의사지만 일단 만나면 꼼꼼하게 하나하나 진단하고 아이에게도 마치 놀아주는 것처럼 잘 해준다.
하지만 38도의 열과 감기 정도에는 약이나 주사를 일체 처방하지 않고 안정을 취하고 과일을 많이 먹이라는 등의 일상적인 말만 해준다. 그들의 처방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 번 클리닉을 방문한 결과, 웬만한 감기는 가봤자 별 거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굳이 약이 필요하면 일반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어린이용 감기 약으로 다스리곤 한다.
모든 검사나 처방에는 담당 가정의(family doctor)나 소아과 의사의 소견서가 필요하며, 결과도 가정의를 통해 알 수 있는 시스템이므로 웬만하면 가정의를 두고 있는 편이 좋다.
하지만 특별한 검사가 필요 없는 경우에는 가정의 보다는 가까운 C.L.S.C를 찾아간다. C.L.S.C는 우리나라로 굳이 말하자면 보건소 같은 무료 봉사 기관이다. 아이들 예방 접종에서부터 가벼운 상처, 응급처치 등을 하는 곳이며, 주로 간호사들이 근무한다. 의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다.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이런 좋은 취지의 시설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의사는 부족하고 환자는 언제나 넘쳐 나는 상황이라 정말 위급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응급실이 있지만 그곳도 충분한 인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가끔은 돈을 내더라도 급할 때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우리나라 병원이 아쉽기도 하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는 것인지….
이 경 희 캐나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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