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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이어-한국의 소송판도]<16>노동소송 (중)근로자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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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이어-한국의 소송판도]<16>노동소송 (중)근로자 규정

입력
200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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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지만, 약자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산재·고용 보험 혜택이 있고, 노동조합을 조직해 부당 해고와 징계 등 사용자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도 주어진다. 때문에 산업재해 인정 여부나 노조 결성권의 유무에 관한 수 많은 노동 소송은 소송 당사자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이른 바 '근로자성(性)'이 주요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근로자성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보면 몇가지 판단기준이 있다. ①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는지 ②업무수행과정에 있어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③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④근로자 스스로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케 하는 것이 불가능한지 ⑤비품·원자재·작업도구 등의 소유 관계 ⑥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이 있는지 ⑦취업규칙·복무규정·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⑧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있는 지 ⑨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 등 다른 법령에 의하여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 받는지 ⑩기타 양 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 등이다.

이 같은 기준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입하다 보면 그 형식적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는 데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레미콘차량 운전자, 방송구성작가, 퀵서비스 배달원, 외근직 AS근무요원 및 판매원, 학습지 방문 교사 등의 직종이 법원이 제시한 이 기준을 넘지 못해 근로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대법원에서 근로자로 인정 받은 직종은 오히려 위의 직종보다 '화이트칼라' 속성이 강한 방송사 소속 TV관현악단, 전공의(인턴 또는 레지던트) 등이다. 대법원 기준의 형식성에 맞추다 보니, 일반인이 생각하는 근로자 개념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최근 생수기 소독·세척 기사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한 판사는 "계약서가 부실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직장 동료의 증언으로 종속적인 관계를 증명하려 하지만 그 또한 객관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하급 법원에서는 대법원의 판단 기준들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법원 판례와 반대로 레미콘 운송기사를 근로자로 인정해 화제를 낳았던 인천지법 부천지원의 판단(2001카합160)이 대표적이다.

대법원 기준을 인정하면서도 각 항목을 실질적 징표와 형식적 징표로 나누었고, 이에 더해 '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을 주요 판단기준으로 부각시킨 것. 부천지원은 이를 근거로 "피신청인들이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에서 상정한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된 운송사업자로 볼 수 있는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런 요소들은 모두 경제·사회적 지위가 우월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므로, 이 같은 요소는 부수적이고 한정적으로만 고려 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노무 공급관계의 성립과 종료에 대한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노무 공급자가 사용자의 사업에 어느 정도 결합돼 있는가' '독자적인 시장접근성의 유무 및 사업자로서의 전문적인 능력이나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보수액은 얼마인가'에 대해서도 접근했다.

특히 직접적인 업무지시 여부를 근로자성의 주요 판단기준으로 삼는 현 대법원 판례는 또 다른 대법원 판례에 비춰볼 때 모순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광고 외근원이 근무시간과 장소에 대한 구속이 없고 광고유치활동에 관해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는다 해도 이는 외근원의 업무 특성 때문이지, 이것만 가지고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거나 회사와 관계가 고용이 아닌 위임 관계이고 원고가 회사 직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근로자의 개념을 판시(87다카683)한 것이 그것이다. 노동 전문 변호사인 김선수 변호사는 "해당 업무가 사업에 필수적 사항인가, 업무가 회사 목적에 맞게 조직하고 통제되는가 하는 것도 중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근로자 인정여부 논란 화물연대가 대표사례

고된 노동과 적은 봉급을 통해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을 체감하는 일선 현장과, 계약서 등 형식을 근거로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법원 사이의 괴리가 낳은 대표적인 비극이 화물연대 사태다. 레미콘 운송자들은 2000년 9월 전국건설운송노조를 설립하고 영등포구청으로부터 노조 설립신고 필증까지 받았다. 그러나 올해 대법원이 레미콘 운송자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재확인하면서 화물연대는 단체교섭 등의 대상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일괄 협상하자""협상 상대가 아니다"는 양측 주장은 운송거부 사태가 파국에 이를 때까지 계속됐다.

법원의 근로자성 불인정은 파국의 근본적 원인은 아니라 해도 운송거부 기간 내내 양측의 대화창구를 원천 봉쇄하는 '악성 바이블'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정부는 운송거부 레미콘 운송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할 방침인데 이 경우 이들을 자영업자로 본 법원이 과연 '자영업자인 만큼 운송 여부는 본인들의 자의적 결정사항'이라고 해석, 일관된 논리를 유지할 지 주목된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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