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고향, 히말라야와 쿤룬산맥에 둘러싸인 세계의 지붕, 천년이 넘는 불교 국가, 1959년 중국 점령 이후 오랫동안 접근이 가로막힌 금단의 땅. 티베트는 이런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23일부터 27일까지 진각종 밀교 성지 순례단을 따라 살펴본 티베트 불교는 중국 점령 하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곳곳에 밀교 신앙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수도 라사와 시가체, 갼체 등의 도시에서는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된 사원의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고 순례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라사 동북쪽 10㎞ 오체산 기슭에 자리잡은 세라 사원. 교학적으로 가장 뛰어나 티베트 불교 대학의 역할을 하는 사찰이다. 티베트력(曆)으로 보름인 이날은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소남 차인 스님의 축원을 받으려는 순례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사원의 주공불(主供佛)인 '마두명왕신'(馬頭明王神)을 모신 법당은 소망을 비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밀교 경전에 나오는 불교의 호법신이라고 하지만 말머리 형상의 신을 석가모니보다 높이 모시는 관습이 낯설다. 14세기 티베트 불교를 개혁한 겔룩파의 시조 총카파 스님을 중앙에, 그 옆에 부처와 제자들의 불상을 배치한 것도 생소하다. 스님들은 하안거 중이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1951년 중국 점령 전에는 많을 때는 8,0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400명에 불과하다.
세라 사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드레풍 사원은 달라이 라마가 수장인 겔룩파 사원 중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과거 1만 명의 스님이 있었지만 지금은 500명 뿐이다. 하안거 해제 후 스님과 신자들이 같이 즐기는 축제인 '쉐둔제'를 앞둔 사원 입구는 정비공사로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건물과 불상을 훼손하면서 벽에 휘갈겨놓은 '미신을 믿지 말고 공산당을 믿으라'는 낙서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홍위병들은 티베트의 7,700개 사원 대부분을 파괴했으나, 지금 중국 정부는 관광 수입을 겨냥해 거꾸로 사원 복구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주민의 98%가 불교 신자인 티베트에서는 건물이나 다리, 산, 호수 등에 '옴마니반메훔' 만트라(진언)가 적힌 오색 깃발 '탈초'와 '룽타'가 나부낀다. 달라이 라마의 궁전이었던 포탈라궁과 사원은 국력을 기울여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온갖 불상으로 가득하고, 불상과 스님들 앞에는 순례객들이 내놓은 지폐가 수북하다. 1,300년 불교 국가의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1959년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많은 고승들이 북인도지방으로 건너간 지 40년이 지난 지금 정작 티베트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진수를 느끼기 어려웠다. 라사 시내에 있는 조캉 사원은 티베트인이면 누구나 포탈라궁과 함께 순례하고 싶어하는 사원이다. 당(唐)의 문성 공주가 가져온 티베트의 첫 불상이 안치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이 사원의 스님 70여명은 그저 사원 관리에 분주하다.
주지 리마 치렌(36) 스님은 "문혁으로 60·70대 고승과 나 같은 30대 스님 사이에 한 세대의 공백이 생겼다"며 "아직 남아있는 몇몇 고승이 밀교의 수행전통을 잇고 있지만 예전처럼 보편적이진 않다"고 말했다. 사원은 점점 호화로워지고 있지만 수행은 전만 못하고, 세속의 영향을 받은 일부 스님들의 부패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주민들의 신심도 예전 같지 않다. 물질 문명의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은 현세의 쾌락을 좇을 뿐 내세를 믿지 않는다.
불교의 정수가 달라이 라마를 따라 인도로 가버린 티베트는 이제 '불교 박물관'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옴마니반메훔(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
/라사=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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