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8월29일 영화배우 잉그리드 베리만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1982년 런던에서 몰(沒). 베리만은 데뷔 초기 스웨덴과 독일 영화계에서 일하다가 1941년 이후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 지도자 아내 역을 맡은 '카사블랑카'(1942·마이클 커티스 감독), 스페인 내전 당시 반파쇼 게릴라 역을 맡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샘 우드 감독),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상속녀 역을 맡은 '프린세스 아나스타시아'(1956·아나톨 리박 감독) 같은 영화가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베리만이 1950년 남편과 딸을 버리고 이탈리아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결합한 것은 미국 영화계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베리만은 이듬해 로셀리니 감독의 '유로파'에서 상류층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공장 노동자로 취직하는 여성 역을 맡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베리만은 5년 뒤 로셀리니와 헤어지고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할리우드는 그녀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수상작 '프린세스 아나스타시아')을 수여함으로써 복귀를 축하했다. 베리만은 1944년 조지 큐가 감독의 '가스등'으로 이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영화 예술의 격과 관련해 사람들이 정작 기억하고 있는 베리만은 같은 스웨덴 출신 영화 감독 잉마르 베리만이다. 초기 작품 '감옥'에서 한 등장인물로 하여금 "삶이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잔인하고 의미 없는 여정일 뿐이다"라는 허무주의적 발언을 하게 한 바 있는 잉마르 베리만은 반 세기 이상의 연출 작업을 통해 삶의 비루함, 인간의 원죄, 신의 존재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즐겨 다뤘다. 잉그리드 베리만의 마지막 출연작인 '가을 소타나'의 연출을 맡은 사람이 잉마르 베리만이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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