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프랑스에서만 1만 여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유럽 폭염 사태가 서구 사회의 노인 관리 시스템 전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망자 대부분이 혼자 살던 노인으로 밝혀지면서 체계화된 복지 시스템의 이면에 응급의료 시스템 부재와 개인주의에 따른 무관심이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연일 프랑스를 달구고 있는 폭염 피해 책임 논란은 이제 근본적인 노령층 관리체계 개선으로 모아지고 있다. '정부의 지각 대응'을 질타하는 여론에 밀린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26일 관계부처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를 소집, 대규모 희생의 원인 분석과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여당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라는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 도입된 주 35시간 근로제로 병원의 바캉스철 인력난이 더욱 심화됐다. 의료진의 근무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병원이 재정난으로 인력 충원을 꺼리면서 "8월에는 아프지도 말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의 무대책이나 시스템이 허점 못지 않게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은 '대중의 무관심'이다. 많은 노인이 나몰라라 휴가를 떠난 가족과 의료진의 무관심 속에 숨진데 이어 아직까지 450여 구의 시체가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프랑스인의 냉담함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일간 르 파리지앵은 26일 머릿기사를 통해 "이들의 잊혀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서구 각국은 시스템의 허점과 개인주의의 그늘이 빚어낸 비극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27일 칼럼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의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에만 65세 이상의 독거 인구가 1,000만에 이르고 특히 75세 이상 여성의 절반이 혼자 살고 있으나 대부분이 이웃과 교류가 없는 상태"라며 "세계가 프랑스의 폭염 피해를 조롱하고 있지만 지난 겨울 미국 동북부의 폭설 사태와 최근 대규모 정전 사태 당시에 얼마나 많은 독거 노인들이 고립 속에 생명의 위기를 겪었는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또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24시간 이메일과 휴대폰을 통해 연락이 가능한 '소통의 시대'이지만 바로 옆 집에 누가 사는지에는 점점 무관심해지는 역설 속에 빠져 들고 있다"며 "제도에 기대기 보다 함께 사는 이웃에 관심을 가지는 서구 사회의 인간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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