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국정운영 분석청와대는 출범 6개월 동안 순탄하지 못한 국정운영으로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정치와 정책 모두에서 구심력을 잃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우선 청와대와 정치권의 대립각이 여전히 뾰족하다. 대북송금 특검 도입에서부터 시작된 청와대와 민주당의 갈등은 신당 문제와 얽히면서 더욱 증폭됐다.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김두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대철 대표 체포동의요구서에 서명한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대치는 더 극단적이다. 최병렬 대표는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 같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한나라당은 사소한 문제마다 특검법, 해임안에 더해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며 청와대를 흔들고 있다.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치권과의 긴밀한 협상이 필수적이지만 정무수석실 요직이 정치권에 별 기반이 없는 386 세대로 채워지면서 이런 조정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책 분야에서 청와대가 구심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청와대 정책실 조직의 문제가 꼽힌다. 청와대는 "장관 위에 청와대가 군림하는 옥상옥 폐해를 없앤다"는 취지로 각 분야 수석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정책결정의 리더십이 사라져 정부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끼리 충돌한 스크린 쿼터, 담뱃값 인상 등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도 청와대의 조정력 상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청와대 내 정책실 기능과 태스크포스팀(TF), TF와 부처의 기능 중복도 정책 결정 과정에 혼선을 갖고 온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법인세 문제를 놓고 노 대통령과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생각이 충돌하고, 노사문제에 대해 노동부와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장이 차이가 나타나는 등 청와대와 정부 부처간의 일부 혼선도 있었다.
이정희(李政熙) 한국외대 교수는 "정부 출범 초기에 정밀한 구상을 갖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변화해 온 것이 청와대 혼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대화(鄭大和) 상지대 교수도 "노무현 정부는 지난 6개월 동안 정당, 공안기구인 검찰, 국정원, 국민의 지지 등 권력기반을 잃고 대통령 혼자 남는 이상한 정치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문제를 직시하고 정권 출범 초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가 제로베이스에서 정부 운영 시스템과 조정 기능 등을 점검,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 盧대통령 통치스타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나고 있는 각 분야의 변화를 '천지개벽'이라고 표현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통치 스타일이 자리잡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변화의 방향은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조차 "두렵고 불안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궁극적으로 성공할지 여부에 대해선 확고한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실험성이 강하다는 것이고 현실과의 괴리 등으로 인해 '실패한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불안감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토론을 강조하며 탈권위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통치에 이용하지 않고 제 자리에 돌려놓겠다는 약속을 실천에 옮긴 것도 탈권위의 핵심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 사이에서는 "사라져야 할 것은 권위주의이지 권위가 아니다"라며 "노 대통령은 스스로 권위의 실추를 초래, 국정불안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때로 불거져 나오는, 노 대통령의 자극적이고 거친 표현에 대해서도 탈권위로 여기기보다는 권위추락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비주류와 소수파로 일관했던 노 대통령의 정치역정이 국정 운영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형 건평씨의 부동산 관련 의혹, 대선자금을 둘러싼 공방 등의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 한 예다. 노 대통령에게 여전히 '돌파형'의 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면돌파는 성패와 관계없이 통합보다는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인사 스타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26일 "가까이에 있는, 검증된 사람을 쓰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검증됐다고 주장하는 대통령 참모들의 성적표는 별로 신통치 않다. 널리 인재를 구하지 않고 당장 편하다고 측근을 중용하는 '코드 인사'는 결국 국정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직접 국민을 대상으로 해 기회 있을 때마다 엄청난 말을 쏟아내는 노 대통령의 '다변(多辯)의 정치'도 포퓰리즘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 盧 정치과제 점검
노무현 대통령에겐 크게 세 가지의 정치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정치 개혁, 전국적 신당을 통한 지역구도 타파, 정계 재편 등이 그것이다. 현상만 놓고 보면 이 세 가지 모두 아직은 성과가 불투명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우선 민주당 신당 논의가 신·구주류간 갈등으로 5개월 이상 표류하면서 상향식 공천과 원내 정당화, 중앙당 슬림화 등 정당 개혁안은 실종돼 버렸다. 지역주의를 탈피한 전국정당 창당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정치자금 투명화 및 선거법 개정 문제는 여야 의원 및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다각적 방안이 모색되고 있고 선거관리위원회도 개정안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타파 방안으로 제시한 중대선거구제 및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정치권의 무관심과 야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당문제나 정치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가 지지 부진한 것은 여야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 조차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신당이나 정치 개혁 과제는 일단 민주당과 국회에 맡겨두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천호선 정무기획비서관은 "당정분리와 신당 불개입 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도 개혁도 당분간 국회에서 추진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개혁 방향을 간접 제시하거나 정무라인을 통해 물밑 조율에 나설 여지는 높다. 민주당 내부에서 신당 추진이 힘들어질 경우 개혁신당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정계 재편을 유도하는 상황도 그려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관 출신 총선 출마자들이 민주당과 개혁신당 중 어디를 선택할 지 한달 가량 지켜볼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 민주당 어디로 가나/"집권여당 맞나"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집권여당 맞나"라는 자조 섞인 말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출범 전부터 시작된 신당 추진 문제로 내내 '집안 싸움'에 매달리느라 집권 여당으로서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민생 및 경제 현안 협의와 곳곳에서 분출되는 사회갈등 조정, 정책 대안 제시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당정간에 손발이 안 맞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법이나 이라크전 파병동의안 처리, 고영구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청와대와 당 소속 의원들간 엇박자는 대표적 사례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부안 원전센터 부지 지정 문제 등에서도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
집권당임을 의심케 하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대철 대표는 굿모닝 시티 사건으로 검찰 소환을 받자 대선자금 문제를 거론, 노 대통령에게 날을 세우고 청와대 문책 인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당이 지리멸렬하게 된 배경은 신·구주류간 집안 싸움이 크지만 당정 분리 원칙을 앞세운 노 대통령의 '방임'도 한 몫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신주류에서조차 "당정 분리는 정치발전상 옳은 방향이지만 대통령이 집권당 리더로서의 기능까지 포기한 채 각종 정치 현안에서 제3자연(然)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대표 조차 당정 협의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민주당을 여당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권이 친노 대 반노 구도로 재편돼야 진정한 여당이 나올 것"이라는 시각이 주류다. "총선 전에는 노 대통령도 사실상 집권당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민주당도 여도 야도 아닌 '정권 재창출당'의 어정쩡한 위상 밖에는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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