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없는 증권사?'처음엔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국 140여 곳에 거미줄처럼 영업망을 갖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판에 컴퓨터 한대로만 승부하겠다고?
키움닷컴증권 김봉수(50) 사장은 이런 의문을 느낌표로 바꿔놓은 국내 온라인 증권거래 비즈니스의 개척자다. '점포 없는 금융업'이라는 김 사장의 실험은 안방에서도 증권거래를 할 수 있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보급과 인터넷 열풍을 타고 찬란한 현실로 바뀌었다. 아이 키우기를 연상시키는 '키움'이라는 재미난 이름만큼이나 회사는 무서운 속도로 쑥쑥 자랐고 꼴찌에서 3년 만에 증권업계 7위를 달리는 '작은 공룡'으로 성장했다.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힘이지요." '국내 최초 100% 온라인 증권사' 라는 씨앗을 뿌린 것은 손잡고 함께 창업했던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 덕이지만, 이만큼 성장한 힘은 키움을 신뢰한 투자자와 인프라를 깔아준 정보기술(IT)산업의 몫이라는 얘기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이 온라인 거래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것도 아닌데 투자자들은 유독 키움에만 몰려든다.
김 사장은 "마케팅의 승리"라고 잘라 말한다. 처음에는 키움이 뭘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첫 실험은 독특한 박자의 노래로 눈길을 끌었던 '키움이 좋아, 좋아'라는 CF광고였다. 우스꽝스럽기도 한 광고 속 노래가 아이들 입에까지 오르내리면서 인지도는 쑥쑥 올라갔다. "백제 무왕이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데려온 것처럼 '키움'이라는 이름을 흔한 곡조로 흥얼거리게 해 기억에 남기려는 시도가 먹혔다"는 게 김 사장의 평가다.
'공짜 마케팅'으로 통하는 파격적인 수수료 인하도 큰 몫을 했다. 0.025%라는 업계 최저 수수료는 물론이고 때로는 '무료'를 치고 나와 지금도 "키움은 싸다"는 인식이 개인 투자자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주식을 사고 파는 단타족(데이 트레이더)은 물론이고 이제는 안전하고 빠른 거래를 원하는 투자자와 기업공개 및 공모주 청약을 받으려는 기업들까지 키움을 찾는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한국 증시의 부침은 여의도 증권가에 발을 들여놓은 지 27년이 넘어가는 그에게도 대박의 허상과 거품 붕괴의 쓰라린 아픔을 안겨줬다.
1970년대 말 쌍용투자증권 영업맨 시절 건설주의 상승랠리는 2000년대 기술주 버블에 버금가는 거품이었다. 액면가 500원이던 건설회사 주가는 당시 중동 건설붐을 타고 10배가 넘는 5,000∼8,000원까지 치솟았다.
끝 모르고 오를 것 같았던 주가는 그러나 79년 말을 정점으로 매일 하한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멈추려니 했던 하한가 행진은 자고 일어나면 계속돼 자그마치 한달간이나 이어졌고 건설주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휴지조각이 돼 갔다. 5,000∼8,000원 하던 주가가 한달 만에 1,000원까지 떨어지자 고객들의 재산은 반 토막 났고 김 사장은 빈털터리가 된 투자자들의 하소연에 시달려야 했다.
건설주 파동은 그를 채권으로 눈 돌리게 했고, '위험 관리'라는 소중한 교훈도 남겼다. 김 사장이 채권팀으로 자리를 옮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채권 금리가 비교적 높아 그의 탁월한 채권 트레이딩 실력은 회사에 많은 수익을 안겨줬고, 고객의 신뢰도 다시 회복했다. "채권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말하는 김 사장은 "주식은 돈을 벌게 할 때도 있지만 더 크게 잃을 위험이 높은 반면 일정한 수익률이 보장되는 채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그는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금융맨의 자랑거리는 대박보다 오히려 리스크 매니지먼트"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일본 등 동양인들은 유독 직접 투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간접상품이 발달한 서양과는 다른 투자 문화지요." 김 사장은 '전문가에게 맡겨도 손해 보더라'라는 인식이 우리 투자자들을 온라인을 통한 직접 투자에 몰입하게 했다고 분석한다. 요즘처럼 외국인 돈의 힘으로 오르는 상승장에서도 좀처럼 개인들이 따라붙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채권으로 다시 일어선 그이지만 "이제는 채권의 시대가 가고 주식이 수익을 안겨주는 시대"라고 주가 상승을 예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 kr
● 나의 경영철학
상담원: 접속이 잘 안되신다고요? 혹시 회사 랜선 사용하세요?
고객: (머뭇머뭇, 웃으며) 나, 오른손 사용하는데요….
랜선을 '왼손'으로 들어 벌어진 에피소드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컴맹'이 많았던 시절, 영업점 없이 온라인 접속으로만 증권 거래를 하다 보니 키움닷컴 고객지원센터(콜센터)에는 온갖 투자자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실체가 보이지 않는 온라인 증권사는 '불안' 그 자체였다. 영업 시작 초기 "만약 회사가 없어지면 내 재산은 보장되나요?" "유령 회사 아니예요?" 등 기업 실체를 의심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 고객지원센터 직원과 상담원들은 자신 있는 태도로 고객을 안심시켰다. 시스템이 말을 듣지 않아 주문표를 들고 뛰어다닐 때도 있었고, 통화량이 넘쳐 점심도 거른 채 전화를 받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고객과 함께 호흡하며 3년이라는 세월동안 우리는 많은 믿음을 쌓아왔다.
점포 없는 비즈니스일수록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서비스가 소중하다. 고객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진솔하고 친절하게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하는 '고객지향· 고객만족·고객감동'이 바로 키움닷컴이 키워가는 기업 문화다. 고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 김봉수 사장은 누구
▲1953년 충북 괴산 출생
▲74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76년 쌍용투자증권 입사
▲91년 쌍용투자증권 채권부장·기획실장
▲94년 SK증권 자산운용담당 이사
▲97년 SK증권 경영지원본부 상무
▲99년 키움닷컴증권 전무
▲2001년 키움닷컴증권 대표이사 사장
● 키움닷컴證은 어떤회사
키움닷컴증권(www.kiwoom.com)의 경쟁력은 업계 최저 수수료와 빠르고 안전한 거래 시스템이다. 하이닉스의 거래량이 10억주를 넘었던 때도 수많은 데이 트레이더들의 몇 초 단위 거래를 에러 없이 거뜬히 소화해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키움은 주식시장 점유율 6%대로 업계 7위, 선물·옵션시장 3∼4위를 다툰다.
국내 1위 증권사의 시장점유율이 8%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대형 증권사의 10분의 1에 불과한 240여명의 직원으로 엄청난 생산성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 증권사 최초로 인터넷과 콜센터 만으로 공모주 청약을 실시하며 기업금융 분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또 프라이빗 뱅킹(PB)를 통한 각종 금융상품 청약, 부동산·세무 상담 등 종합 재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종합 금융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대주주는 지분 75%를 가진 거래소 상장기업인 다우기술이며 삼성물산 한미은행 대구은행 등이 투자했다. 내년중 코스닥시장 등록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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