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에 스키니시로'. 요즘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동영상 제목이다. 바로 MBC가 방영한 미니시리즈 '네 멋대로 해라'이다.'E―동키' 등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P2P(개인 대 개인 파일교환) 프로그램 검색 창에는 '네 멋대로 해라'를 보려고 일본인들이 입력한 '오마에 스키니시로'가 수시로 뜨고 있다. 아직 일본에서는 TV 방영이나 DVD 출시가 이뤄지지 않아 오직 동영상 파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본어 자막이 없다 보니 일본 네티즌들이 스스로 만든 자막 파일까지 함께 돌고 있다. 최근 일본 모 TV방송사에서 '네 멋대로 해라'를 수입하려다가 주연 양동근의 외모를 문제 삼아 취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성토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오마에 스키니시로'의 인기는 대단하다.
'네 멋대로 해라' 뿐만이 아니다. 현재 NHK가 방영하고 있는 KBS 미니시리즈 '여름향기'와 최근 국내에서 DVD가 출시된 미니시리즈 '옥탑방 고양이' 등의 동영상 파일도 P2P서비스에 뜨고 있다.
일본 DVD시장을 점령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열풍은 DVD와 비디오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재팬의 8월 DVD판매순위를 보면 TV다큐멘터리 부문 1위가 여러 편으로 나눠서 출시된 '겨울연가' 1편(일본 제목 '겨울 소나타')이며 겨울연가 2편은 5위를 차지했다. 겨울연가는 비디오 부문에서도 1,2,3,4위를 휩쓸고 있다.
겨울연가 DVD의 인기는 NHK 방영을 놓친 시청자들이나 겨울연가 애호가들이 두고두고 보기 위해 구입하고 있고, NHK가 일본어로 방송하고 있는 이 드라마의 원래 맛을 즐기기 위해 한국어판을 사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밖에 7장 세트로 나온 '가을동화'와 '이브의 모든 것'이 DVD로 팔리고 있다.
아마존재팬 8월 DVD 판매순위 영화부문에서는 5위인 '시카고'를 제치고 차태현, 전지현이 주연한 '엽기적인 그녀'가 4위에 올랐다. 참고로 1위부터 5위까지 일본 영화는 한편도 없으며 '007 어나더데이', '반지의 제왕 일반판'과 '반지의 제왕 확장판' 등 할리우드 영화 일색이다.
심지어 일본의 극성팬 가운데는 일본에서 구할 수 없는 DVD를 한국의 인터넷쇼핑몰에서 사기도 한다. DVD제작사이자 쇼핑몰 운영업체인 비트윈의 김정우씨는 "일본 고객들이 '네 멋대로 해라', '러브레터' DVD를 심심찮게 주문하고 있으며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도 5월 일본에서 DVD가 출시되기 전까지 상당량을 일본 고객들이 사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 DVD시장에 한류열풍이 불다 보니 아예 DVD 판권이 TV 판권보다 먼저 팔리는 예도 있다. KBS미디어에 따르면 원빈이 주연한 드라마 '광끼'의 DVD 판권이 TV 판권에 앞서 팔려 9월 일본에서 DVD로 발매될 예정이다. '광끼'의 경우 지난해 일본 TV에서 방영된 '가을동화' 덕분에 원빈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DVD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MBC는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DVD로 먼저 출시한 뒤 TV로 방영하자는 제안을 받고 검토 중이며 '로망스'는 8월말 DVD로 발매된다. 또 '레디고', '호텔리어', '별은 내가슴에' 등이 일본에서 DVD로 선보일 예정이다. SBS도 NHK BS1채널과 드라마 '해피투게더', '올인' 수출협상을 벌이면서 DVD수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한류 조짐, TV에서 드라마 소설까지 번져
일본의 한류열풍 조짐은 한국드라마가 TV 전파를 타면서 시작됐다. 현재 일본에서 방영중인 대표적인 한국드라마로는 NHK BS2의 '겨울연가'와 MXTV와 후지TV의 '로망스', 무비TV의 '가을동화', 홈드라마채널의 '진실' 등이 있다. 이 드라마들 외에 MBC의 '다모', '옥탑방 고양이'가 현재 NHK, 아사히, 후지TV 등 6개 일본 지상파 방송사에 낙점된 상태이며 KBS의 '보디가드'와 '여름향기', SBS의 '올인', '해피투게더' 등이 일본 지역민방 및 위성방송사의 수출협상 리스트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내용이 '드라마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묶여 나오거나 한국어 교재용 대본집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겨울연가'는 7월20일 두 권의 소설로 출판돼 8월말 현재 28만부가 팔렸다. 또 '별은 내 가슴에', '안녕 내사랑', '레디고' 등도 소설 출시를 위해 일본 출판사와 MBC프로덕션이 출판권 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드라마와 영화가 이처럼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을 무엇일까.
일본 소니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즈 텔레비전의 가와고에 테쓰야 프로듀서는 일본 여성들의 '신데렐라 신드롬'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가 주로 방영되는 시간대가 밤 10시 이후"라며 "이 시간대에는 직장여성과 가정 주부가 주 시청자여서 용모가 빼어난 배우들이 출연해 사랑을 나누거나 어려움을 딛고 눈부시게 성공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요인은 한편으로 한국 드라마 수출을 제약하기도 한다. MBC프로덕션의 구대성 국제사업부장은 "아직까지 국내 드라마의 일본 수출은 작품성보다 스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일본 방송사는 배용준, 최지우, 원빈, 장동건, 송승헌 등 미남미녀 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를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방송 된 지 3년이 지난 최지우의 '진실'이 전파를 타는 반면 작품성에서 인정을 받은 '네 멋대로 해라'는 꽃미남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
KBS미디어 국제사업부의 김대규씨는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폭풍을 일으키려면 지상파를 많이 타야 한다"며 "아직까지 일본 지상파 방송은 자체 제작이 많아서 한국 드라마가 끼어 들 여지가 적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지역민방과 위성 방송을 통해 한국 드라마가 관심을 유발한 만큼 지상파 방송에 본격 진입할 날도 멀지 않았다"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DVD, 소설 등 다양한 형태로 대거 일본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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