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자부터 격주로 게재되는 광고면에 최신 광고기법, 해외 광고업계의 새로운 동향, 광고제작 뒷이야기 등을 다루는 현역 광고인들의 칼럼 '광고인들이 쓰는 CF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편집자주
2001년 가을 귀뚜라미 보일러 CF 최종 콘티 시사회 회의 때 일이다. 2000년 히트 드라마 '허준'의 이희도, 이혜숙씨를 기용해 소비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거꾸로 타는 귀뚜라미 보일러'를 알리는 데 성공한 제일기획의 제작팀은 바짝 긴장했다.
CF가 성공을 거두면 광고주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님'의 CF에 대한 주문은 항상 명확하다. "주부들의 실생활 이야기를 주부들의 언어로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달라."
원래 차기작 '경비원편'의 모델로는 임현식씨가 물망에 올랐다. 광고주 앞에서 콘티 설명에 나선 제일기획 제작본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오경수 차장이 "가스비 만만치 않을텐데…"라며 몸소 연기를 선보였다. 능청까지 섞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모두 회장님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분의 말 한마디에 콘티의 채택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말이 나왔다. '거, 오 차장님이 직접 해주면 딱 좋겠는데요.' 모두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 차장은 이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귀뚜라미의 공식 모델로 발을 딛게 되었다. 오경수 차장은 벌써 해찬들 고추장, 세콤 등 20여편의 광고에 출연한 중견 CF모델이다.
최근 일반인들을 모델로 세우는 것이 유행 아닌 유행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차별성이다. 빅모델을 추구하는 CF계에서 경쟁사와 달리 일반모델을 전격 기용하여 소비자와의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아파트가 나오지 않는 아파트 광고'로 아파트 광고의 차별화를 선언한 삼성물산 래미안 광고가 대표적인 예. 빅모델 만을 사용하는 아파트광고의 전형에서 벗어나 전편에서 일반 모델을 활용,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두번째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있다. 돈 벌기 위해 일을 하던 시대를 넘어서 일과는 별도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끼 있는 사람들이 CF에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세번째는 요즘 제품들이 철저하게 소비자 위주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광고를 채택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모두 소비자의 곁에서 숨쉬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실제 아버지와 아들을 모델로 내세운 삼성카드, 일반 대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화이트 등 일반 모델을 기용한 회사들은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친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기업들이다.
2003년 가을 귀뚜라미 보일러 신규 CF 시사회장. 가스보일러의 '집고르기'편에서 수더분한 복덕방 아저씨 역을 특유의 능청스런 연기로 훌륭하게 소화해낸 오 차장에게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께서 이렇게 말했다. '오 차장님, 앞으로 딱 10년만 더 합시다'
김 성 수 제일기획 A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