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일문자나 이성에 대한 고대인들의 자괴감을 엿볼 수 있는 신화들은 뜻밖에 많다.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가 창조주의 명을 거역하고 따먹은 선악과, 그로 인해 낙원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는 선악과는 인간들이 '우리들(창조주, 신) 가운데 하나처럼 되어 너희(인간들)가 벗은 줄을' 깨닫게 되는 과일, 인간이 '신들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는 열매였다. 페르시아 신화는 인간이 다름아닌 악마에게서 처음 글을 배웠다고 말한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창힐(蒼)이 문자를 발명해내자 하늘과 땅이 놀라고, 귀신도 놀라서 흐느꼈다. 이성이나 문자라는 것은 고대인에게 결코 달갑지만 않은 물건이었고 그런 그들의 복잡한 생각이 이런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셈이다. 어째서일까? 무엇 때문에 고대인들은 문자를, 이성을 그다지 두려워하고 금기시했을까? 오늘날 문학이 지닌 자의식은 고대인들이 이성이나 문자에 대해 품었던 자괴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학이란 놈은 수상쩍은 것이다. 수상쩍지 않은 것은 모름지기 문학이 아니라 해도 무방하다. 물론 수상쩍다고 해서 다 문학일 수는 결코 없겠지만.
○월 ○일
사람은 누구나 마술에 걸려 있다. 어떤 편견, 편견은 아니라 해도 어떤 철학, 세계관, 어떤 고집이나 집념, 욕망…. 어쩌면 나와 상생(相生)할 수 없는, 나로서는 진정 이해하기 힘든 남들의 모든 그런 면모를 마술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그와 내가 바람직한 관계를 맺으려면 나는 그가 걸린 마술을, 그는 내가 걸린 마술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만나는 방식이다.
모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즉 괴물을 쓰러뜨리고 그 괴물의 포로가 되어 있는 그 사람을 구출해낸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 사람이 속한 세계, 그것이 괴물이 사는 동굴, 그 사람이 포로가 되어 사는 동굴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 전체가 괴물의 동굴이니까. 크고 작은 괴물들이 인간과 나라를 사로잡아 휘두르고 있으니까.
삶은 그 괴물과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그는 이미 괴물의 포로다. 동시에 인간도 삶도 사라진다. 노예와 굴욕이 있을 뿐이다. 싸움 가운데 비로소 삶이 있고, 싸움 가운데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싸움인 까닭이 그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왕자가 괴물을 쓰러뜨리고 포로가 되어 있는 공주를 구해내어 결혼을 한다거나 마술에 걸려 두루미가 되어 있는 오빠들을 막내 누이가 가시나무로 옷을 만들어서 구해낸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이 무수하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고대인들은 세상의 그런 면모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괴물의 동굴 같은 이 세계, 거기에서 구원되는 것, 마술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을 성취하는 것.
오래 전부터 세계는 그렇게 왜곡되어 있었다. 세계의 왜곡이 모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켰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면 바로 그것, 왜곡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왜곡된 자신과 그렇게 왜곡된 또 한 사람 사이의 관계, 그것을 정상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괴물 같은 세상과, 즉 상대방과, 또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두 친구, 두 연인 사이의 싸움은 단순히 그들 두 사람만의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바로 이 세계 전체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무슨 싸움이든, 사람과 사람이 싸우건 나라와 나라가 싸우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고대인들의 이야기 얼마나 수상쩍은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었다.
○월 ○일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강요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변질되고 만다.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를 이웃 나라에, 시민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회주의는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닌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침략이나 전체주의, 독재나 야만, 강제노동 수용소 같은 것으로. 실제로 동구에는 사회주의라고 하면 우선 강제노동 수용소를 연상하는 시민들이 무수하다고 한다.
민주주의나 평화, 인권 역시 강요되면 그 순간 변질되어 괴상한 것이 되고 만다. 부시가 이라크에 대해 강요하는 것을 보라. 그가 북한에 대해 하는 짓을 보라.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도 평화도 인권도 아니다. 아마 괴물의 포효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다 그런 괴물과 동시대에 살게 되었는지 무섭고 안타깝고 혐오스러울 따름이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전세계의 수많은 평화 운동가들이 총알받이를 자청하여 이라크로 들어갔다. 그들은 언제라도 이 세계,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인종과 국가, 계급과 생김생김의 차이를 막론하고 처형될 사람들의 대열과 그들을 처형하는 자들의 대열로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꺼이 처형될 사람들의 대열로 걸어 들어갔다.
무서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 세계가 언제라도 그 두 대열로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을 부시의 미국이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나라와 사람은 누구든지 테러의 공범이라고 공언했고, 그 얘기를 전세계 사람들이 다 들었다. 할 수 없이 한국과 노무현 대통령도 그곳에 파병을 함으로써 처형자들의 줄에 합세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처형자들의 대열에 끼어 들고 싶은 생각이란 없다. 그렇다면 이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다름아닌 총구와 표적지 사이의 거리인 셈이다. 바로 북한에 대해, 이 나라에 대해 부시의 미국이 하고 있는 짓을 보면, 무서운 일이지만, 다시 한번 그것은 사실이다.
권력이나 폭력, 전쟁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본과 물질, 욕망의 총구는 끈질기게 사람들을 저 피살될 사람들의 대열로 밀어붙인다. 다시 한번 이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총구와 표적지 사이의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총구와 표적지 사이에 이 즐거움, 이 사랑과 이해, 꿈과 그리움과 아름다움…. 스스로 피살자들의 대열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비록 아슬아슬하다고는 해도 분명히 존재한다. 기적이 아닌가. 인간이 혼자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기적,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기적. 인간 관계란 얼마든지 추악하고 치욕스럽고 야비하고 공포스러울 수 있지만 또한 이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기적을 만들어낼 줄 모르는 우리들은 모두 잔인한 바보들, 아니면 야비한 겁쟁이들이다.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고 비루한 연명을 위해 저 고대의 괴물들, 현대의 괴물들에게 지레 스스로의 존엄과 목숨과 자유를 갖다 바치는 비굴한 노예들이다.
○월 ○일
나무들의 언어. 꿋꿋하게 땅에 뿌리내리고 서서 베어져 쓰러지지 않는 한 결코 변치 않는 나무들의 언어.
다시 저 불영사의 나무가 하는 얘기를 들으러 가야겠다. 이 머리 속에 자갈 같은 말들만 왁자지껄하다.
○월 ○일
연꽃은 연꽃일 뿐이고 진흙은 진흙일 뿐이라고 한다면 문학 예술은 없다. 수상쩍은 게 전혀 없지 않은가. 진흙이 연꽃이기도 하고, 연꽃인가 하고 보면 진흙에 지나지 않는 것, 그런 진실을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문학이요 예술이다.
나에게 희망을 얘기해 달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나 역시 희망을 말할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게 좋아서 절망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마침내 희망을 만나게 되리라는 큰 기대를 품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글을 열심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아무런 희망도, 그 근거나 씨앗도 찾을 수 없었다. 공허할 따름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희망이라고 말하면 나는 무섭다. 저 브레히트의 동독이, 솔제니친의 소련이, 김학철의 북한과 문화혁명기의 중국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말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이미 완수되었다! 그러나 그의 치하에서 죽어간 사람은 2,000만명을 헤아린다. 주민들이 아사(餓死) 지경에 빠져 있다는 평양 거리에는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구호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그들이 나에게 강요하는 희망은 저들의 행복과 그다지 먼 거리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굶주린 행복과 근거 없는 희망, 완벽한 한 쌍이 아닌가.
그들은 절망 속에서 절망 외에는, 희망에서 희망 외에는 볼 줄 모른다. 오히려 절망 속에 희망의 싹이, 희망 속에 참혹한 절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진흙은 진흙, 연꽃은 연꽃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건 다 그만 두고라도 우선 수상쩍은 게 너무나 없어서 재미없다.
● 약력
1953년 전북 남원 출생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86년 장편 '구경꾼'으로 '소설문학' 현상공모 당선
소설집 '인형 만들기' '내 영혼의 우물' '혼돈을 향하여 한 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구렁이들의 집', 장편 '잠과 늪'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안에서 바깥에서' '아름다운 나의 귀신' '서커스 서커스' 등
백상예술대상(1983) 영희연극상(1985) 대한민국문학상(1985) 대종상 각색상(1988) 대산문학상(1995) 박영준문학상(1997)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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