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SES, god를 키운 가요계 최고의 '황금 손'. 게다가 기획사의 말단 로드매니저에서 사장자리까지 올랐으니 모든 후배 매니저들의 우상이다. SM엔터프라이즈대표와 (주)싸이더스 음반사업부문장을 거쳐 지난 5월 F&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유진'과 '빈'을 만능 엔터테이너로 키우고 있는 정해익(36)대표. 그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연예매니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HOT가 가는 곳은 어디든 붙어 다녀 공연 현장의 팬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2년 전 god 맏형 박준형 퇴출소동 때 팬들의 공격타깃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박준형이 탤런트 한고은과의 열애설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 팀을 이탈하는 등 돌출행동을 하자 퇴출을 결정했다가 팬들로부터 인터넷 게시판과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의 강한 저항을 받았던 것.
"팬들의 파워에 1주일만에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연예인은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인기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할 수 있고, 인기절정의 그룹도 순식간에 깨질 수 있거든요."
그는 지금도 연예인의 이성교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팬들은 TV에 나온 스타가 자신이 못하는 것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울고 웃으며 열광하는 것이다. 스타는 항상 성실하고 노력해야 하며 사생활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자칫 스캔들을 만들 수 있는 이성교제는 연예활동을 하는 동안은 자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때문에 HOT 초창기부터 멤버들과 같이 숙소생활을 했다. 술 담배는 절대 허용하지 않고 팬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일까 봐 한번도 멤버들을 나이트클럽에 데려 가 본 적이 없다.
HOT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오히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생명력 유지를 위해서는 자기노력과 관리가 필수라는 생각에 멤버들에게 더욱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처럼 생활태도를 중시하는 관리원칙은 90년 SM에 입사해 처음 로드매니저로 일했던 '현진영과 와와'가 대마초사건으로 몰락하는 것을 경험한 게 바탕이 된 것 같다.
체신공무원 출신인 그는 '현진영과 와와'의 방송 출연때 운전과 수행을 맡는 것은 물론이고 라디오 방송국을 돌며 LP판을 배부하는 것에서 사인회와 각종 이벤트, 주수입원인 야간업소 출연까지 24시간을 곁에 붙어서 일했다.
그래도 항상 즐거웠다. 단지 생계를 위해 택한 직업이었어도 자신이 홍보한 음반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 나오고, 인기순위가 올라갈 때의 감동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그동안의 고생은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었고 당연히 그도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렀다.
그러다가 96년 HOT가 구성됐다.가수출신인 이수만대표의 "일본에는 아이돌 스타가 많은데 국내에는 서태지 이후 이렇다 할 10대 가수가 없다. 지금이 때이다"라는 의견에 따라 치밀한 계획 속에 만든 그룹이었다. 당시는 학원폭력이 심각해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10대의 건전한 문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우선 밝은 캐릭터의 멤버 5명을 선발하고, 학원폭력을 고발하는 '전사의 후예'를 타이틀로 1집을 제작했다. 탈출구가 없던 10대들이 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HOT는 곧 10대 문화의 대변자가 됐다.
"숙소의 전화번호를 바꾸면 3일을 가지 못했어요. 등록을 직원이름으로 하다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 이름을 빌려도 곧 전화통에 불이 났고, 숙소도 방배동에서 3번이나 이사한 후 흑석동, 한남동으로 옮겨 다녀야 했죠. 팬들이 공연장이나 집 근처에 세워둔 차에서 번호판을 떼어 간 것을 모르고 운전하다 경찰에 쫓기는 일도 있었고요. 모두 즐거운 추억이에요." 그에게도 팬레터가 왔다. '멤버들에게 잘해 주라'는 내용부터 '매니저가 되고 싶다' '밑에서 일하고 싶다' 등. 조직적인 팬클럽이 탄생하고 유니폼이 생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매니저의 지위도 크게 향상됐다. 과거 방송과 연예인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뿐, 가수측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출연 전에 프로그램의 성격에서부터 출연자의 비중과 연출자까지 확인하고, 소속 연예인이 돋보일 수 있도록 제작자들과 협의할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98년 그의 결혼식은 연예인 결혼 못지 않게 하객이 화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예계 안팎 모든 직종의 사람이 몰려 마치 스튜디오와 출연자 대기실을 옮겨 놓은 듯 했다. PD 방송작가 코디네이터 이벤트 광고 항공사 여행사 호텔 경호업체의 직원 등 스타를 필요로 하는 사람 수백명이 장사진을 쳐 '정해익이 스타 뒤의 진짜 스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HOT의 성공으로 오디션에 지망생이 몰리면서 SES와 신화의 탄생이 이어졌다.
99년 SM의 관리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엔터프라이즈 사장을 지낸 그는 연예계 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중국에서 의류사업을 시도했으나 얼마 못 가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우노필름의 차승재대표, 당시 god 소속사인 EBM기획의 정훈탁대표, 그리고 가요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정해익이 뭉쳐 대형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는 것. 영화 방송 가요계의 실력자가 함께 기업을 하면 크게 성공할 것으로 낙관했다.
2000년 5월 정해익은 이렇게 탄생한 (주)싸이더스에 음반사업 부문장으로 들어가 당시 TV코너 '육아일기'로 인기를 높이던 god를 관리하게 됐고 3집음반 '거짓말'이 200만장이나 팔리며 성가를 올렸다.
그러나 다른 부문의 부진으로 회사가 다시 분리되면서 F&J엔터테인먼트를 설립, 독립하게 됐다. 'F'는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과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고 'J'는 성의 이니셜. 정해익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솔직한 인간관계로 꼽는다. 소속 연예인의 인기가 오르면서 출연요청이 중복되는 게 가장 힘들었던 점. 특히 새 음반을 낸 후 TV들이 누가 먼저 출연시키느냐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는 매니저로서 가장 고통스러웠으나 평소 쌓은 인간관계와 신뢰를 앞세워 "다음에 반드시 더 큰 효과를 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고비를 넘겨왔다.
그는 새 회사를 만들면서 자신이 발굴해 SES 멤버로 키웠던 유진에게 4억원이란 큰 돈을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다양한 끼와 재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한 첫 솔로음반 '더 베스트'의 성공에 자신을 얻은 정대표는 유진을 연기자와 방송MC를 겸하는 만능 연예인으로 키우며 그가 괌 동포 출신이라는 점을 활용, 영어권에 진출시키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룹 LUV의 활동을 마감하고 시트콤 출연으로 연기력도 인정받은 빈은 CF쪽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아이스크림 햄버거 화장품 스포츠용품 등 다양한 광고의 모델로 활동 중. 또 건강하고 활달한 이미지를 살려 '몸치 탈출'이라는 비디오를 만들고 9월 중순 시작하는 KBS 미니시리즈 '상두야 학교가자'에도 출연한다.
유석근 편집위원
"미래읽는 마케팅능력 필수"
가수 매니저는 연예인을 수행하는 단계를 넘어 급변하는 음악산업의 미래를 읽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전문 능력을 지녀야 한다.
매니저 채용은 인맥을 통하거나 공개적으로 실시하는데 일단 지망생들은 기존 연예인들의 사례를 연구, 이들의 마케팅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분석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료로 만들어 놓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매니저도 수습기간이 있는 회사가 있으므로 직접 찾아가 자신의 포부와 기획력을 설명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매니저는 적극성에 따라 성과에 큰 차이가 난다. 단순히 뒷바라지를 담당하는 게 아니라 가수의 경우 공연전에 무대와 의상을 점검하고 다른 가수와 신인도 연구 분석하며 업계의 흐름을 파악, 음반 출시 시기 등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신인양성등 회사의 비밀 엄수와 소속 연예인의 사생활 등에 대한 철저한 보안유지가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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