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의 분위기를 연일 달구고 있는 북녀 미인들의 응원열기. 우여곡절 끝에 대구에 온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살피는 남녘 사람들의 손길도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세심하다. 남북간의 자유로운 왕래에 대한 기대도 그 만큼 커진다. 배를 타고 가야만 했던 금강산도 내달부터 육로가 개방된다. 때를 같이 해 일만이천 봉우리 중 처음으로 세존봉이 개방될 예정이다. 더위가 꺾인 만큼 산행객도 늘어날 전망이다. 세존봉은 금강산 관광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남북한의 스포츠교류가 하나둘씩 물꼬를 트면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에 서는 날도 머지 않았으리라. 미리 가본 세존봉을 통해 금강산의 진면목을 들여다보자.여름 금강산, 이른바 봉래산은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달초 본격 개방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미리 공개한 금강산 세존봉(1,160m)은 구름을 머금은 채 호락호락 자태를 드러내지 않아 더욱 신비감을 자아냈다. 등정코스도 험난하기 짝이 없다.
고성군 온정리에서 출발한 버스가 신계천 동석다리앞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됐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아름드리 적송 군락이다. 적송뿐 아니다. 떡갈나무, 참나무, 가문비나무 등 각종 활엽수 등이 뒤섞였다.
산림욕장을 걷는 것처럼 가뿐하다. 상쾌한 공기가 코를 찌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1시간 가량 걸으니 동석동이다. 너럭바위위에 올려진 커다란 돌에 눈에 띤다. 동석(動石)이다. 흔들바위라는 말이다. 설악산 와선대에 흔들바위를 옮겨놓은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등산로옆 계곡의 옥색빛 머금은 이름모를 소(沼)와 담(潭)들을 따라 다시 30분 가량 올라가면 합수목이다. 집선연봉, 세존봉, 채하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나는 곳이다. 폭포는 아니지만 옆에서 들리는 소리는 폭포를 연상케 할 만큼 요란하다.
합수목을 지나면서 길이 험해진다.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땅만 보고 걷는 일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있던 철제다리가 끊어진 채 방치된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사가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정상이 가까워져오고 있음을 느낀다.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겨우겨우 옮기며 2시간을 그렇게 걸었다.
순간 500m 가깝게 솟아오른 직각에 가까운 바위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철제계단. 20년이 넘어 녹이 심하게 슬었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 오금이 저린다. 100m 정도 오른 뒤 아래를 내려봤다. 안개비와 구름까지 가리고 있어 손을 놓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다. 순간 계단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가뜩이나 비에 몸이 젖어있는 데 식은 땀까지 흘린다.
300m 정도를 더 오른 후에야 겨우 평지를 만났다. 다 올라왔구나 싶었더니 다시 급경사가 이어진다. 100여m를 오르니 드디어 세존봉 정상이다. 출발 4시간 만이다.
맑은 날이면 동으로 해금강, 서쪽으로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1,638m), 장군봉(1,560m), 남으로 채하봉(1,588m), 집선봉(1,351m), 북으로 옥녀봉(1,424m), 상등봉(1,227m)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비로봉이 팔을 벌려 세존봉을 중앙에 놓고 둥그스럼하게 껴안은 형상이다. 외금강 중심에 위치, 금강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구름과 안개가 잦아 여름에는 이 같은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이 흔하지 않다고 한다. 이 날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만 지나면 안개가 걷힐까 기다렸지만 하릴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안개사이로 문득문득 보이는 산아래 모습은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그대로였다.
하산길은 설상가상이었다. 숲이 우거져 등산로를 덮어버린 곳이 한둘이 아니다. 어렵사리 길을 헤치고 1시간 반을 내려가니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가뜩이나 지친 심신을 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최고의 난코스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고 10여분을 걸었다. 갑자기 폭포의 우렁찬 물줄기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구룡폭포. 외금강 최고의 계곡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곳. 힘든 산행 끝에 맞는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는 관광로로 개발이 돼있어 절경을 감상하면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현대아산측은 등산로에 대한 정비, 보수작업을 거쳐 9월 중순 단풍철에 맞춰 일반인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금강산=한창만기자 cmhan@hk.co.kr
등산, 밤낚시, 온천.
금강산 여행이 다양해졌다. 1998년 11월 금강호가 첫 출항한 이후 5년이 다 돼가지만 1만2,000봉을 헤아리는 금강산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이번에 개발되는 세존봉 코스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금강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성인 걸음으로 7∼8시간은 족히 걸리는 세존봉코스는 가족단위 여행객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 등산동호회나 고교, 대학생 단체관광객에게는 하루 코스 여행으로 권할 만 하다.
밤낚시도 가능해진다. 현대아산측은 선상호텔인 호텔해금강 베란다에 낚시터를 마련했다. 현재 미끼공급 문제를 두고 북한측과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낚시대를 메고 금강산여행을 떠나는 날이 멀지 않았다.
금강산여행의 또 다른 별미는 온천욕을 즐기는 것. 온정리(溫井里)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곳은 예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현대아산이 지은 금강산온천은 8,000평부지에 동시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온천. 약한 방사능을 함유한 섭씨 40도가량의 중탄산나트륨 성분이 포함돼있어 피부병, 심장병, 신경통에 좋다. 지친 산행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1회에 12달러, 2회에 20달러.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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