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경제전문가 36인 설문조사지난 6개월간 참여정부 경제정책 운용과정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혼선에 따른 정부의 신뢰상실'인 것으로 지적됐다. 또 정책혼선의 가장 큰 책임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있으며, 경제팀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본보가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재계·금융업계·증권업계·학계·연구기관 등의 경제전문가 36명을 대상으로 26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참여정부의 경제운용에 대한 총평을 묻는 질문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9.0%,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16.1%로 45.1%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저 그렇다'가 45.2% 였으며, '잘하고 있다'는 9.7%에 불과했다.
가장 문제가 많았던 정책분야에 대해서는 55.0%가 '노사관계 등 노동정책'을 꼽아 노사분규에 대해 정부가 원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 의견이 많았다. 이어 '부동산시장 안정'이 19.6%, '경기 대응'이 11.8%, '구조개혁'이 9.7% 등의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잘했던 분야로는 '카드채 문제 등 금융시장 안정'이 38.1%로 가장 많았으며, '경기대응'이 30.9%로 나타났다. 정부의 경기조절 능력에 대해서는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셈이다.
또 참여정부 경제정책 운용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는 응답자의 73.5%가 '정책혼선에 따른 신뢰상실'을 꼽았다. 법인세 인하 여부, 스크린쿼터 축소 여부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 내각간 불협화음, '원칙'과 '대화' 사이를 오락가락한 파업대응 등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또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불안정'을 꼽은 응답자가 14.8%, '분배위주의 경제정책'이 8.8%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책혼선에 대한 책임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있다'가 38.7%, '대통령에 있다'가 32.3%로 나타나 10명중 7명이 청와대가 정책혼선을 야기했다고 응답했다. 내각과 조율되지 않은 채 터져나온 청와대의 발언과 경제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에 대한 비판이다. 정책혼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는 응답은 16.1%였고, '경제내각에 있다'는 대답은 3.2%에 불과했다.
경제팀 개각 필요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63.3%가 '부분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대답했으며,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13.3%에 달했다. 반면 '개편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23.4%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책 수행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장관 등에 대해서는 서둘러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교체 대상자로는 권기홍 노동부 장관,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 김진표 경제부총리,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거론됐다.
한편 참여정부의 기업·노동 정책기조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친(親) 노동자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77.4%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립적' 16.2%, '친 기업적' 3.2% 등으로 조사됐다.
/경제부
■ 경제관료 성적표
각계 경제전문가들이 참여정부 경제장관들의 6개월 성적을 평가한 결과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이 가장 후한 점수(75.1점)를 받았다.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문제 등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과 가계대출 급증현상을 비교적 잘 해결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74.6)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73.6)이 각각 2, 3위에 올랐다. 박 장관은 재정개혁, 지방분권화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고 기획예산처에 특별히 첨예한 쟁점 현안이 없었던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 국적 문제로 취임 초기 구설수에 올랐던 진 장관은 이후 신성장동력 확보, 공무원들의 업무방식 혁신 등을 주도한 데 따른 평가로 풀이된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72.8)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72.1) 등은 중위권에 올라 체면을 세웠고, 경제운용의 중심에 있었던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70.3)은 70점에 겨우 턱걸이 했다.
한편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66.3)과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64.6)은 하위권에 머물었다. 최 장관은 화물연대의 파업에 미숙하게 대응했을 뿐 아니라,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이 별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적 학자출신의 이정우 실장은 소신있는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그의 주장이 한국적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정부부처와의 정책혼선을 야기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
설문에 응해주신 분(가나다순)
<재계> 김인 삼성SDS 사장 남용 LG텔레콤 사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재계>
이순종 (주)한화 부회장 이용경 KT 사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
표문수 SKT 사장
기아차·현대차·GM대우는 실명 비게재 전제로 설문에 응함
<금융업계> 고영선 대한생명 사장 구자준 LG화재 사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금융업계>
김정태 국민은행장 김종창 기업은행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이덕훈 우리은행장 이수광 동부화재 사장 이종석 LG카드 사장
<증권업계> 김대송 대신증권 사장 김병균 대투증권 사장 증권업계>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도기권 굿모닝신한증권 사장 박종수 대우증권 사장서경석 LG증권 사장 안창희 한화증권 사장 정태석 교보증권 사장
홍성일 한투증권 사장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학계·연구기관>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종웅 현대경제연구원장 학계·연구기관>
김중수 KDI 원장 남성일 서강대 교수 이근 서울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 하성근 연세대 교수
■ 주요정책 평가와 과제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의 경제성적표는 한마디로 '바닥권'을 기고 있다. 2·4분기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동기 대비 1.9% 증가에 그쳐 외환위기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도·소매 판매는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고, 기업의 설비투자도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3%대 중반으로 상승했고 청년실업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악화한 경제상황의 원인으로 이라크전쟁과 북핵 문제 등 외부 요인과 SK글로벌 사태, 카드채 위기 등 내부 악재로 인한 불가피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정부 내부의 정책조율 실패와 정책 실기(失期) 등이 겹쳐 경제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위적 부양없다" 손발묶여
경기부양책 정부가 제출한 4조4,775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이 지난달 중순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재정의 경기대응 기능을 적극 활용했다"고 자화자찬 했지만, 이미 경제가 많이 나빠진 상황이어서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참여정부가 출범 초 부동산투기, 가계대출 부실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강조, 경제운용의 폭을 제한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힘못쓰는 투기억제책 양산
부동산 안정대책 분양권 전매금지, 투기지역 확대, 신도시 조기 건설, 단기 거래차익에 대한 양도세 강화 등 강도 높은 투기억제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정부는 '5·23 부동산 안정대책' 이후 집값 급등세가 둔화, 장기적으로 안정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서울 집값은 2001년 이후 2년간 35.4% 폭등한데 이어 올해도 매매가격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서는 시가의 30% 정도를 반영하고 있는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진표 부총리가 제기했다가 정치권 등의 반발로 한발 물러선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과'도 도입 시기와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시점이라는 지적이 많다.
투자유치 가시효과 없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경제자유구역 지정, 외국인 투자유치제도 개선 등의 정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학교·병원 설립 등의 문제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도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가 여전히 반발하고 있어 대규모 공장증설이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김 부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내놓았던 법인세 인하문제 역시 올해 세수의 어려움 등으로 "경쟁국의 동향을 봐 가며 중기적으로 검토한다"는 쪽으로 정리된 상태다.
FTA·투자협정등 낮잠
통상정책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한·미 투자협정(BIT) 체결 등 굵직굵직한 통상 현안들이 이익집단의 거센 반발과 부처간 대립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칠레 FTA 비준안은 정치권이 농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 내년 총선 이후로 처리가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한·미 BIT 체결 역시 경제부처와 문화관광부가 한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고 있어 부처간 협의가 완전 중단된 상태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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