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기자단과 남한 보수단체가 충돌했을 때, 마찰의 발단은 보수단체가 내건 플래카드 문구이다. "김정일 타도하여 북한주민 구출하자."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동포가 산다." 북한에서 기자는 공무원과 같이 체제의 일부를 이루는 엘리트층이다. 그들은 지도자와 체제가 동일시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북한 기자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자기네 지도자가 죽어야 할 사람으로 매도되는 것을 그냥 두고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는 동정어린 시선이다.■ 보수단체가 벌인 두 번의 해프닝으로 처음에는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했고, 이번에는 대구시장이 서둘러 북한측에 사과해야 했다. 두 사람의 사과에 대한 대구 시민의 반응이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회의 성공을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잔칫집 주인의 심정일 것이다. 시민들은 처음에는 북한이 불참하면 어찌하나 하고 마음을 졸였고, 지금은 북한선수단이 철수할까 봐 긴장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민심의 흐름을 잘 아는 대통령이나 시장이니 웬만한 불상사는 사과를 하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는 기묘하게도 북한을 수용하고 있다.
■ 김정일 위원장은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선수단을 보내놓고 두개의 게임을 보고 있다. 하나는 대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벌이는 경기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몰입하며 보는 것은 선수들의 게임이 아닐 것이다. 세계최고의 스포츠를 두 번이나 즐겼던 한국인에게도 유니버시아드는 그저 그런 스포츠행사이다. 그래서인지 북한미녀 응원단의 흥행효과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습을 스포츠신문기사 보듯 넘어간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시선이 갈린다. 정말 민족이 하나된 화합의 상징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고, 북한선수단을 트로이의 목마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 이렇게 다른 두 시각이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 혼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의 마음속에도 '민족'과 '국가'를 놓고 갈등이 존재한다. 이것은 균형이 잡힌 갈등이다. 그러나 균형감각을 잃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집단을 매도하며 편을 갈라 마찰을 빚을 때 남남갈등은 심각한 파장을 일으킨다. 북한정권이 좋아하는 게임환경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가 되어 북한을 도와주어야지, 북한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쪼개지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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